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인데, 완전히 뮤지컬화 했다기보다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경계선에 올려다 놓은 듯한 느낌이다. 이런 시도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페라와 뮤지컬 팬을 다 잡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대사와 가사가 꽤 시적이고, 분량이 많아 우리말이지만 자막이 서비스된다. 우리말 공연을 자막을 보며 감상한다는 사실이 꽤 신기했다. 배우들도 대부분 성악에 가까운 발성을 사용하고 있어 관객으로서도 리스닝을 제대로 하려면 미간을 좁혀가며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작품의 제목 ‘투란도’는 주인공인 공주의 이름이다. 한자로는 ‘投蘭圖’라고 쓰는데, ‘그림이 된 외로운 난초’라는 의미를 지녔다. 꽤 멋들어진 표현이지만, 요즘 말로 하면 ‘얼음공주’란 얘기이다.

차가운 메탈 느낌이 나는 네 개의 무대장치는 대단했다. 턴테이블을 따라 시시각각 돌면서 성벽이 되기도 하고, 궁과 방이 되기도 한다. 프로그램 북에 의하면 ‘세상과 커다란 벽을 쌓고, 그 속에 난초처럼 도도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투란도의 모습을 상징함’이라고 되어 있는데, ‘과연, 그렇군’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남자 주인공 ‘칼라프’ 왕자로 출연한 박인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류정한과 박은태의 음색을 절반씩 떼어다 믹싱을 해놓은 듯한 느낌인데, 소리 자체가 울림이 크고 뻗는 힘이 좋아 듣고 있으면 막혔던 뭔가가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곡들도 버릴 게 없을 만큼 잘 나와 이날 공연에서 박인배는 입만 열었다 하면 절창을 들려주었다. 관객석에서는 박수와 함께 함성이 쏟아졌다.
반면 ‘투란도’ 공주 역의 윤지영은 고음에서의 청아함은 일품이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져 아쉬움을 남겼다.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공주’로서의 표정연기는 일품이었지만.
‘칼라프’ 왕자를 짝사랑하는 비운의 여인 ‘류’는 중요한 조연으로 꽤 비중이 크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이날 ‘류’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긴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류’가 공연 내내 구사한 바이브레이션은 어쩐지 불길하게만 들렸다.
‘칼라프’ 왕자의 불운한 미래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사려 깊은 복선이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리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목소리의 떨림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음정을 희생하면서까지 불안한 미래를 암시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맘마미아’의 경쾌함을 기대한다면 한없이 길고 지루한 작품일지 모르지만, 오페라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큰 공감과 감동을 누릴 수 있는 공연이다.
우리나라 1세대 스타 뮤지컬 연출가 김효경 서울시뮤지컬단장이 제자들과 의기투합해 2년에 걸쳐 다듬은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투란도’의 공연 포스터에 명기돼 있듯, 이 작품에는 ‘아이돌’도 ‘스타배우’도 없다. 이 작품의 ‘스타’는 작품 자신이다.
‘스타’가 아닌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