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러분의 가족을 잘 알고 있나요? 연극 ‘잘자요 엄마’

입력 2015-07-08 0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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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요, 엄마…”

이 말을 한 채 자신의 방문을 잠가버리는 딸, 굳게 닫힌 문을 열라고 소리치는 엄마. 잠시 후 커다란 총소리가 한 번 울린다. 딸의 방문에서 뒤돌아선 엄마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끌여준 코코아 냄비 접시를 끌어안으며 공연은 막을 내린다.

딸 ‘제씨’의 예상치 못한 선택을 받아들여야 하는 엄마 ‘델마’와 자신의 삶에 처음으로 확실한 선택을 하려는 딸의 모습을 그리는 연극 ‘잘 자요, 엄마’가 7년 만에 돌아왔다. 1982년 레퍼토리 극장(America Repertory Theatre)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이듬해 퓰리처상 드라마 부분을 수상했으며 1987년 국내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김용림, 윤석화, 나문희, 박정자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이 연극을 거쳐갔다.

“엄마, 나 오늘 자살할거야”라고 선언하며 자살을 결심한 딸은 엄마가 혼자서도 지낼 수 있도록 이것저것을 일러준다. 시간에 흘러감에 따라 제씨의 결심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린 델마는 제씨를 설득하기 위해 코코아를 만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등 어떻게든 시간을 늦춰보고자 한다.


처음 이들은 평행선을 달린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제씨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델마는 딸의 자살을 막으려 한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는 시점에 두 사람은 조금씩 거리를 좁혀간다. 서로에게 솔직해진다.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마음 깊숙한 이야기까지 꺼내며 ‘삶’과 ‘소통’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파고들게 한다. 가장 가까워서 감춰야 하는 ‘가족’이라는 이 모순된 관계는 현재 우리 시대의 가족상을 돌아보게 하며 갈등과 이해를 거쳐 화해를 하게 되는 대화의 과정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함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결코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델마’ 역의 김용림과 나문희는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친다. 브라운관에서 보여준 근엄하고 강인한 ‘어머니’를 잠시 벗어난 김용림은 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엄마로 열연한다. 늘 톡톡 튀는 연기로 소녀 같은 매력을 뿜어냈던 나문희 역시 애절한 엄마로 연기 변신하며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이미 오래 전 ‘델마’ 역을 해왔고 ‘국민 엄마’로 인정 받은 김용림과 나문희의 연기에선 연륜이 묻어난다. 그들이 뱉는 대사는 실제 딸에게 하는 말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딸 ‘제씨’역을 맡은 이지하와 염혜란은 각각 다른 묵직함으로 엄마 ‘델마’에게 다가가 눈길을 끈다. 담담하지만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열연하는 배우들을 골라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8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트원씨어터 1관.

딸의 자살보다는 모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수현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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