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에 이어 ‘1급기밀’ 등 정치적으로 해석될 만한 영화에 잇따라 출연한 김상경은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방산비리 내부고발자가 겪은 고통에 공감
영화는 영화로만 봐야…편 나누는 건 싫어
홍기선 감독님 혼자 200만은 책임진다더니
제법 묵직한 영화를 내놓는 배우 김상경(46)의 얼굴에서는 의외로 웃음과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워낙 긍정적이고 유머를 겸비한 성격의 영향도 있지만 그만큼 작품에 갖는 자신감이 크기 때문인 듯 보였다.
김상경은 그야말로 ‘쿨’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손잡고 극장에 와서 함께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인 것 같다”며 “그간 엄혹한 정치 이슈에 영화가 많이 연루됐지만 이 작품은 군대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고 했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김상경은 ‘1급기밀’(감독 홍기선·제작 미인픽쳐스)의 24일 개봉을 앞두고 말수가 더 늘었다. 해야 할 이야기, 하고 싶은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 ‘1급기밀’에서의 김상경.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영화는 실화 소재다. 국방부 군수본부에 부임한 박대익 중령은 공군 전투기 추락 사고가 빈번해지자 의문을 품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놓고 국방부와 미국 방산기업간 모종의 계약을 발견해 이를 폭로한다. 2009년 MBC ‘PD수첩’을 통해 방산비리를 폭로한 해군 김영수 소령이 김상경이 연기한 박대익 중령의 모티프가 됐다.
“영화에서 박대익이 겪는 일은 김 소령님이 직접 경험한 일들이다. 한밤 협박전화에 시달리고, 자녀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에 엘리트 군인으로 살아온 분인데, 그런 일을 당하니 얼마나 억울했겠나. 기꺼이 내부고발자가 돼 비리를 세상에 알렸지만 지금도 그분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1급기밀’은 한국영화에서는 처음 방산비리를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는다. 일부 군 수뇌부가 각자 이익을 위해 국방을 볼모로 벌인 파렴치한 일들이 영화에선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휴머니즘도 있고 유머도 많았다. 그런데 편집과정을 거쳐 지금의 색깔이 됐다.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많이 덜어냈다. 촬영 내내 감독님이 이번 영화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촬영 끝나고 쫑파티를 하면서도 감독님은 혼자 200만 명은 책임질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김상경(가운데)과 홍기선 감독(맨 오른쪽). 사진제공|미인픽쳐스
그게 마지막이다. 홍기선 감독은 8년여 동안 준비한 ‘1급기밀’의 촬영을 끝내고 며칠 뒤인 2016년 12월15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감독님을 그 전엔 잘 몰랐다. 영화운동 1세대이고 ‘이태원 살인사건’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길 듣고 처음엔 ‘조심해야 하나’ 싶었다.(웃음) 만나보니 마치 쌀집아저씨처럼 따뜻했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막걸리 얘기였다. 나는 백암막걸리, 감독님은 지평막걸리가 맛있다고. 그런 대화만으로도 감독님에게선 고수의 분위기가 났다. 만약 살아계셨으면 영화엔 다른 개성이 담겼을지도 모르겠다.”
김상경은 ‘1급기밀’을 통해 아이러니한 상황도 여러 번 겪었다. 시나리오를 받은 무렵에는 뉴스에서 연일 방산비리 척결에 대한 소식이 보도됐다. 그는 내심 “방산비리는 정권도 주력하는 이슈”라고 생각했다.
“웬걸. 자꾸만 제작 일정이 늦춰졌다. 모태펀드 투자도 안 된다고 하고. 군대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 군대에서 잘못을 저질러 자기 잇속을 챙긴 이들을 비판하는 영화다. 방산비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 그러니 경계할 게 아니라, 군대가 단체 관람을 통해 접해야 할 영화다.(웃음)”
김상경은 영화에서 우직하게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인다. 군인으로 성공이 보장된 길에서 유혹의 손길도 받지만 끝내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런 모습은 김상경과 이질감 없이 어울린다.
“감독님이 굳이 왜 나를 택했을까. 선하고 정직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부고발자가 겪는 심적인 고통을 더 드러내 보이려고 나를 쓴 것 같다. 아니면 드라마에서 두 번이나 세종대왕을 연기한 영향일수도 있고. 하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의 김상경. 사진제공|기획시대
김상경은 ‘1급기밀’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석될 법한 영화에 참여한 경험이 더러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소재의 ‘화려한 휴가’도 그 중 하나다. 최근 정치적인 성향과 색깔이 부여되는 영화가 늘고, 정치권의 영향도 받는 분위기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일지 궁금했다. 김상경은 “영화는 영화로만 봐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이 영화로 이슈를 만들고 배우들이 그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상황을 나는 원치 않는다. 가령 나는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 친구분들도 좋아한다. 그분들도 나를 사랑해준다. 하지만 정치 성향은 나와 다르다. 내가 어떤 성향인지를 공개한다면 우리 어머님은 어떤 마음일까. 그래서 나는 편을 나누는 게 싫다. 내 직업은 대중과 만나는 배우일 뿐이니까.”
영화 ‘1급기밀’의 김상경.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1년에 한 번씩 스크린에서 만나고, 그 보다 자주 TV 드라마에서 마주하는 김상경은 매번 관객과 시청자에게 부담 없이 다가선다.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팬덤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싫어하는 안티도 없다. 언제나, 꾸준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단단한 믿음을 준다.
“영화에서도 오직 그 캐릭터로만 보이길 바란다”는 그는 “개인적인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예능 출연 제안이 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능에 출연한 나를 보고 사람들이 ‘쟤 무지하게 떠드네’, ‘뻥이 세네’ 그런 말 할 거 아닌가. 하하!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강한 캐릭터로 기억되기보다 영화 자체에 자연스럽게 묻어가면서 영화로 기억되고 싶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