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발레로 날아오른 빌리, 보고 또 봐도 뭉클

입력 2018-03-1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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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코치의 심부름으로 발레교실 선생님을 찾아왔다가 수업을 지켜보며 조금씩 빠져드는 빌리(오른쪽 남자아이). 사진제공|신시컴퍼니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탄광촌서 발레 배우는 아이들…아기자기한 감동
예술성이 담긴 어린 빌리와 성인 빌리의 2인무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이견이 없는 명작입니다. ‘당신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것 100가지’ 같은 목록에 넣어둘 만합니다. 사실은 일부러라도 쑤셔넣어 드리고픈 작품이죠. 빌리 엘리어트를 본 뒤의 당신은 보기 전의 당신과는 분명 다른 사람일 테니까요.

빌리 엘리어트는 대처 수상 시절의 영국, 파업 중인 탄광촌을 배경으로 발레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한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로도 유명하죠.

빌리 엘리어트에는 명장면이 많습니다. 살짝 치매기가 있는 할머니가 빌리를 앉혀 놓고 먼저 세상을 떠난 주정뱅이 할아버지 얘기를 들려주는 장면, 윌킨슨 선생이 빌리의 죽은 엄마가 남긴 편지를 읽는 장면, 어린 빌리가 절규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춤으로 표현하는 장면 등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한 장면. 사진제공|신시컴퍼니


그런데 빌리 엘리어트의 진짜 매력은 이것들 외에도 관객 저마다 ‘나만의 명장면’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죠. 그만큼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극의 초반에 파업 광부들과 경찰들이 대립하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이들의 격렬하고 과격한 대립 사이에 황당하게도 발레수업을 받고 있는, 하얀 튀튀를 입은 아이들을 끼워 넣었거든요. 기가 막히도록 멋진 역설입니다.

무용교습실에서 ‘찐따’ 취급을 받던 빌리가 윌킨슨 선생 앞에서 처음으로 자세를 잡아 보이는 장면도 찡하죠. 빌리와 마이클이 누나, 엄마 옷을 훔쳐 입어보다가 펼치는 패션쇼 장면은 뮤지컬 아이다의 암네리스 공주가 시녀들과 보여주는 패션쇼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훨씬 더 소박하지만, 아이다에서 볼 수 없는 아이들만의 귀여움이 있습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어린 빌리와 성인 빌리의 2인무.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어린 빌리와 성인 빌리의 2인무는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 예술성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입증합니다.

윌킨슨 선생이 시궁창이라 표현한 가난을 치약 짜듯 꾹꾹 눌러 하얀 희망을 자아내는 극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개천 용’ 장르 작품의 정점에 놓일 만한 뮤지컬이죠. 빌리가 힘껏 헤엄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개천을 꼬물꼬물 빠져나오는 데에서 마침표를 찍은 것도 세련된 마무리입니다.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로군요.

커튼콜마저 명장면이 되어버린 빌리 엘리어트를 위해 여러분의 버킷리스트 한 칸을 꼭 비워두시길. 지금 만나는 분이 혹시 “어, 저도 빌리 엘리어트 참 좋아해요”라고 한다면 조금 더 진지한 만남을 고려해 보시는 것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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