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듀얼인터뷰] ‘레슬러’ 감독과 제작자 “친남매 같죠?”

입력 2018-05-11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레슬러’의 김대웅 감독(왼쪽)과 제작자 이안나 대표는 ‘친남매 케미’의 힘으로 관객에게 따뜻한 가족애를 전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영화 ‘레슬러’ 김대웅 신임감독과 베테랑 제작자 이안나 대표

김 감독
매일 취직해라 잔소리하던 우리 엄마
영화 보시더니 행복하다고, 하하!
내 화두는 가족…위로가 되고 싶어요

이 대표
2년간 동네카페서 친남매급 수다
김 감독의 최대 무기는 성실함
‘과속스캔들’ 때처럼 느낌 좋아요


따뜻한 영화가 절실한 요즘이다. 보고나면 마음 훈훈해지는 영화도 그립다. 친구나 연인의 이야기여도 좋지만 가족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관계라면 더 반갑지 않을까. 마침 5월이다. 가족이 모일 기회가 많은 지금, 극장에선 영화 ‘레슬러’가 상영하고 있다.

배우 유해진 주연의 ‘레슬러’(제작 안나푸르나필름)는 아버지와 아들이 ‘살과 살이 부딪히는’ 레슬링을 매개로 벌이는 이야기다. 발칙한 도발로 시작하는 영화는 줄곧 유쾌한 웃음을 던지고, 끝내 훈훈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레슬러’가 탄생하기까지 함께 머리를 맞댄 시간만 4년. 이번 작품으로 연출 데뷔한 김대웅(36) 감독과 제작자인 이안나(39) 대표를 영화 개봉 하루 전날 만났다. 이제 막 영화판에 들어온 신인감독의 얼굴에선 긴장의 빛을 찾을 수 없었고, 여러 편의 흥행작을 만들어온 베테랑 제작자는 반대로 “긴장된다”고 했다. 서로를 향해 스스럼없이, 때론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두 사람은 감독과 제작자를 넘어 ‘친남매 케미스트리’를 자랑했다.

영화 ‘레슬러’의 김대웅 감독(왼쪽)과 제작자 이안나 대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언제 취직할래? 언제 결혼할래?”

이안나 대표는 사실 제작자보다 프로듀서로 영화계에서 더 유명하다. ‘흥행 연출자’로 통하는 강형철 감독과 손잡고 2008년 내놓은 ‘과속스캔들’이 822만 관객을 동원한 게 성공의 시작이다. 신인이던 강 감독은 데뷔작으로 유명세를 얻었고 이안나 대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둘의 흥행 시너지는 ‘써니’(736만), ‘타짜 - 신의 손’(401만)으로 이어졌다.

소위 ‘이름 날리는’ 베테랑 프로듀서와 연출 지망생의 만남은 2014년 5월 시작됐다. 돌아보면 분명 인연이다. 당시 김대웅 감독은 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창의인재프로젝트에 지원했다. 영화전문가와 10개월간 함께 시나리오를 기획, 개발하는 프로그램이다. 감독은 지원서에 “이안나 PD를 멘토로 만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왜 꼭 이안나 PD여야 했을까.

“한국영화아카데미를 2010년에 졸업했는데 그때 다른 동기들이 심오한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나는 ‘과속스캔들’을 꼽았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김)

“그 얘길 처음 들을 땐 거짓말인 줄 알았다. 하하하! 한국영화아카데미 나온 사람이 ‘과속스캔들’을 가장 좋아한다니. 그건 좀 아니지 않나.”(이)

그렇게 두 사람은 멘토와 멘티로 만났다. 마침 집도 가까웠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두 사람은 각자의 집 중간지점에 있는 카페를 베이스캠프 삼아 시나리오 개발을 시작했다. ‘레슬러’는 당시 김대웅 감독이 써놓았던 8편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를 바탕으로 했다. 나머지 7편의 시나리오 역시 ‘레슬러’와 마찬가지로 전부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라고 했다. 감독이 가진 가장 큰 화두는 “가족”이다.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과거는 어땠을까, 지금 엄마는 뭐가 제일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엄마는 내가 영화 하는 걸 반대했다. 빨리 취직해서 돈 벌어라, 언제 결혼할래 같은 말들을 얼마 전까지 들었다. 그러던 엄마가 오늘 아침엔 ‘너무 행복하다’고 하더라. 하하! 아무래도 영화가 나와서겠지.”(김)

김대웅 감독은 ‘영화광’이 아니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컴퓨터공학과로 전공을 택해 대학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날 위해 희생하는 걸 봤고, 좋은 데 취직해서 돈 벌고 결혼하길 바라는 엄마의 꿈을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이 달라진 건 군 복무를 마친 뒤였다.

“어떤 가족이 진짜 행복한 관계일까, 나도 내 꿈을 찾고 엄마도 엄마의 꿈을 찾아가면 좋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 그맘때 친한 친구가 단편영화 작업을 도와달라고 했고, 그게 영화의 시작이다. 소극장에서 그 영화를 공개할 때 느낀 전율이 나를 영화로 이끌었다.”(김)

영화 ‘레슬러’의 한 장면들. 사진제공|안나푸르나필름


●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영화에 그대로

‘레슬러’는 한 때 레슬링 국가대표를 꿈꾸던 아빠 귀보(유해진)와 그의 아들인 레슬링 유망주 성웅(김민재)의 이야기다. 성웅의 단짝 친구인 가영(이성경)이 느닷없이 귀보를 향한 짝사랑을 고백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영화는 귀보와 성웅이 맺는 부지지간의 성장을 보여준다. 한편으론 귀보가 자신의 노모(나문희)와 겪는 ‘웃픈’ 이야기도 펼쳐진다. 누군가의 부모이고, 또 누군가의 자식인 입장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아기자기한 대사와 설정은 김대웅 감독과 이안나 대표가 2년여 나눈 수없는 ‘수다’를 통해 완성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동네 카페에서 진행한 시나리오 회의는 일단 서로의 엄마 이야기를 꺼내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정작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은 30분? 3, 4시간은 서로 가족이야기를 쏟아냈다. 아마 우린 서로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 거다.”(이)

“한 번은 엄마랑 둘이 밥 먹으면서 얘길 하다가, 하도 말이 안통해서 ‘엄마는 나랑 대화하기 싫어?’라고 따져 물었다. 엄마가 대뜸 ‘대화를 해봤어야 알지, 평생 혼자 지껄이고 살았는데!’라고 하더라. 그 순간, 앗! 엄마 잠깐만! 방금 그 말 좀 적어둘게. 하하!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엄마의 그 말이 영화에선 나문희 선생님 대사로 쓰였다.”(김)

처음엔 그저 함께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입장이었지만, 완성된 뒤 상업영화로 만들자는 데까지 의견이 모아졌다. ‘실전’의 시작이었다. 연출 경험이 없는 신인 감독과의 작업, 이안나 대표의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감독이 경험이 없다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는 거지. 하하! 이 사람이 진짜 내 편인 것 같은 기분이랄까. 김대웅 감독의 최고 장점은 성실함이다. 천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웃음) 성실함이 먼저다. 사람들을 대하는 선한 마음, 좋은 에너지도 있다.”(이)

영화 ‘스윙키즈’의 한 장면. 사진제공|안나푸르나필름


● “두 번째 합작? 이미 출발!”

이안나 대표는 이번 ‘레슬러’를 시작으로 올해 한국영화 기대작인 ‘스윙키즈’의 제작도 맡았다. 이번에도 강형철 감독의 작품이다. 보통 인연은 아닌듯 싶은 두 사람은 대학 동기로 처음 만났다. 이 대표의 전공도 사실 영화연출이다.

“대학 3학년 때 영화 ‘취화선’ 제작부 막내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그땐 영화 프로듀서 개념도 자리 잡히지 않을 때고, 임권택 감독님 작품이라 많이 배웠지만 그만큼 어려웠다.”(이)

워낙 일찍 영화계에 입문하기도 했지만 유독 여러 화제작이 그의 손을 거치기도 했다. 안병기 감독의 공포영화 ‘폰’과 ‘분신사바’, 원신연 감독의 ‘가발’ 등이다. 그렇게 한창 많은 작업을 하던 때에 대학 동기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강형철 감독을 만났고, 그때 강 감독이 직접 쓴 몇몇 시나리오를 받은 걸 계기로 ‘과속스캔들’이 탄생했다. 이안나 대표는 “‘레슬러’ 때와 ‘과속스캔들’ 때가 정말 비슷하다”고 했다.

“당시 영화사 사람들이 다른 일로 떠난 뒤에 (강)형철 오빠와 둘이 남았다. 그렇게 2년 동안 준비한 영화가 ‘과속스캔들’이다. 김대웅 감독처럼 강형철 감독도 어딜 안 간다. 내 옆에 자꾸 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하하!”(이)

‘쿨’하게 말하지만 관객의 정서를 파악해 파고드는 재능이 없다면 지금 같은 흥행 성과는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런 이 대표를 4년간 가까이 지켜본 김대웅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 전에도 내가 쓴 시나리오를 읽은 피디님은 많았다. 내가 만난 분들은 보통 시나리오를 어떻게 고치라고 조언하고 끝났다. 이안나 대표는 같이 고민한다. 내 입장에서 같은 눈으로 어떻게 해볼까, 함께 출발한다. 그게 다르다.”(김)

영화 ‘레슬러’의 김대웅 감독(오른쪽)과 제작자 이안나 대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두 사람은 함께 이룬 파트너십을 앞으로도 이어갈 생각이다. 두 번째 작품 기획도 시작했다. 다음영화는 “가족과 음악이 있는 로드무비”다. 제목은 ‘기덕’. 작업을 이어가는 믿음은 “영화에 갖는 지향이 닮아있어서”라고 했다.

“내 인생의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 ‘인생은 아름다워’, ‘미스 리틀 선샤인’처럼 따뜻한 가족영화다. 내가 위로받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김)

“나는 성장하는 이야기가 좋다. 물론 우리가 조금 성장한다고, 우리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그냥 고개를 조금 돌려 옆을 볼 수 있는 정도의 성장이면 된다.”(이)

이들이 함께 만들어낼 영화 세계가 내심 궁금해진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