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북마크] ‘한국인의 노래’ 보현스님 “80년대 아이유였다, 노래 한 번에 집 한 채 출연료” (종합)

입력 2020-08-01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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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북마크] ‘한국인의 노래’ 보현스님 “80년대 아이유였다, 노래 한 번에 집 한 채 출연료” (종합)

7월31일 KBS1 ‘한국인의 노래’ 6회에서는 MC 최수종이 ‘노래하는 스님’ 보현스님과 ‘감성 보컬 선술집 사장’ 안병재 씨를 위해 노래 배달에 나선 모습이 그려졌다.

'한국인의 노래'는 최수종이 사연의 주인공을 직접 찾아가 그만을 위해 특별 편곡한 노래를 배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최수종이 첫 번째 노래 배달을 위해 향한 곳은 남양주에 있는 ‘불암산’. 그곳에서 만난 오늘의 주인공은 ‘노래하는 스님’ 보현스님이었다.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님은 출가 이전에 가수였다고 말하며 노래와의 특별한 인연을 밝혔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남산 길을 걷던 중 CF 감독에게 캐스팅되어 광고모델로 데뷔하게 됐다는 보현스님. 당시 방송국에서 신인 배우였던 최수종을 만났었다고 말하자, 최수종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시네요”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작곡가 이봉조의 눈에 띄어 가수 ‘이경미’로 데뷔한 보현스님은 KBS 드라마 ‘사모곡’의 주제곡을 부르며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스님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 만큼 경제 사정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야간업소를 하루에 아홉 번까지 뛰어봤다. 노래 한 번에 집 한 채 정도의 출연료를 받기도 했다”라며 화려했던 연예계 삶을 회상했다.

하지만 “그만큼 화려했던 삶에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가 있었다”라며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야간업소 활동 당시 “노래만 부르면 된다는 생각과는 달리,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자리로 와달라는 멘트가 있었다”라고 밝히며 화려한 모습 이면의 어두운 연예계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스님은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도 행복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게 속세를 떠나기로 했다.

7남매 중 장녀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던 스님의 출가는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변 사람의 반대로 출가를 했다가 속세로 돌아오기를 여러 번, 삭발한 상태에서 가발을 쓰고 무대에 선 적도 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출가 이후의 스님은 “진정한 참회로써 평화를 찾았다”라고 말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며 돌봤고, 그렇게 봉사하며 깨달음을 전파했다. 이어 스님은 “노래를 다시 시작한 것도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노래' 음악 멘토 하광훈 작곡가는 보현스님의 노래를 듣고 “노래로 압도하려 하는 게 아니라 스님의 소리 안에서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선곡하면서 “고음과 기교 없이 마음으로 부르는 목포의 눈물은 어떨지 궁금하다”라며 기대를 내비치었다.

완성된 노래를 들은 보현스님은 “내 노래를 들으니 그냥 눈물이 나려고 한다”며 감격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최수종도 눈물을 보이며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되고, 위로됐으면 한다”는 소감과 함께 노래 배달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음 노래 배달 장소는 서울 광진구였다. 주인공을 만나기 전 완성곡을 미리 들은 최수종은 노래를 듣고 ”역대급이다“라고 극찬하며, 주인공의 정체가 궁금한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의 두 번째 주인공은 ’감성 보컬 선술집 사장‘ 안병재 씨. 선술집에서 요리, 서빙, 심지어 노래도 한다는 주인공의 사연을 듣기 위해 두 사람은 가게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안병재 씨가 노래를 시작한 계기는 조금 특별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한 건물에 족발집과 노래방을 같이 운영했다는 안병재 씨는 ”(7살 때부터)부모님이 바쁠 때면 노래방 카운터를 보며 자연스레 노래를 많이 부르게 됐다“고 밝혀 최수종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환경 덕분인지 또래보다 뛰어난 노래 실력에 학창 시절부터 이미 교내에선 노래로 유명했다고 전했다.

안병재 씨는 교내 운동회, 장기자랑, 아파트 노래자랑 등 노래할 무대만 있다면 가리지 않고 나갔다. 성인이 되며 참가한 케이블 채널 MTV 오디션에서는 우승까지 거머쥐며 VJ 활동도 시작했다. 당시 가수의 꿈이 머지않아 보였던 그는 ’노래를 하는데 대학까지 가야 하나‘하며 모 대학 실용음악과의 장학 입학 제안을 거절했던 사연을 전했다.

이후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안병재 씨.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던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앨범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건물 공사를 이유로 한 달만 쉬자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한 달이던 휴식 기간은 여섯 달이 되었고, 결국 회사는 없어졌다. 안병재 씨는 ”꿈에 거의 근접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모든 게 무너지니까 힘이 없었다. 그때는 노래가 싫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사건 이후로 가수 꿈을 접고 더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안병재 씨. 주변 친구들보다 이뤄놓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돈 벌 수 있는 자리는 다 찾아가서 해봤다“라며 생계에만 몰두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눈 내리는 겨울, 친구들과 홍천 ’산천어 축제‘에 가던 안병재 씨는 운전하며 습관처럼 노래를 불렀고, 친구가 이를 찍어 SNS에 올렸던 것. SNS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안병재 씨는 쏟아지는 노래에 대한 찬사와 응원에 다시 노래하고 싶은 열정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그는, 노래할 수 있는 라이브 선술집을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노래' 음악 멘토 하광훈 작곡가와의 선곡 과정도 특별했다. 앉아서도 쭉쭉 뻗어가는 안병재 씨의 가창력에 깜짝 놀란 작곡가는 몇 번의 테스트 후 ”우리나라 노래 중 ’넘사벽‘ 노래가 있지 않냐“며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추천했다. 이에 안병재 씨는 곧바로 자기 노래인 듯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래를 들은 작곡가는 ”내가 그만큼 노래했으면 (음반) 200장 냈을 것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완성곡을 들은 안병재 씨는 ”회사가 없어지고 라이브 카페에서 일할 때 많이 불렀던 노래다. 그때는 정말 부르기 싫었다“며 ’네버 엔딩 스토리‘에 얽힌 사연을 고백했다. 하지만 ’네버 엔딩 스토리‘는 영화처럼 본인의 곡으로 돌아왔다. 안병재 씨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 기회는 올 것으로 생각했다“라며, ”전 국민이 아는 노래가 내 이름으로 나온다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너무 좋다“라며 기쁨의 눈물과 함께 소감을 마쳤다.

사진 제공 : KBS 한국방송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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