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큐’ 사인, ‘마왕’ 신해철과의 대화가 재개된다

“꺼졌던 마이크에 다시 불이 들어온다. 기술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고(故) 신해철의 철학과 언어가 AI를 매개로 2025년 청취자 앞에 돌아온다. 넥스트유나이티드(대표 윤원희)는 전설적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스트스테이션 더 넥스트(Ghoststation: the Next)’를 12월 14일 유튜브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11년 만에, 그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대화가 열리는 것이다.

2001년부터 11년 동안 방영된 ‘고스트스테이션’은 음악과 사회, 청춘의 감정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며 열성적인 팬덤을 형성했다.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이 세상을 떠나며 중단됐던 이 대화는, 2025년 새로운 형태로 돌아올 예정이다. 넥스트유나이티드는 신해철의 말, 글, 인터뷰, 음악적 철학 등을 아카이브 형태로 분석해 그가 남긴 가치가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고 신해철 넥스트유나이티드 제공

기획진의 출발점은 단순한 물음이었다.
“만약 신해철이 지금 살아 있었다면,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어떤 말을 남겼을까.”

이 물음을 중심으로, 제작진은 고인의 철학과 질문들을 기반으로 ‘지금 세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DJ’를 설계했다. 시스템은 과거 발언을 재활용하거나 고인의 입장을 대신하는 방식이 아니라, 신해철이 남긴 사유의 틀을 토대로 현재의 상황을 해석하는 개념으로 설정됐다. 프로그램은 매 회차마다 “나는 신해철이 아니다. 나는 그가 남긴 질문과 생각들이 지금을 사는 방식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해, ‘부활’이나 ‘복제’가 아닌 ‘계승’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는 여러 AI 기술이 활용된다. 넥스트유나이티드는 대본 구성, 음성 복원, 비주얼 제작 등에 상용화된 AI 도구를 배치해 프로그램 구조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중심축은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라는 점을 강조하며, 고인의 정신을 다시 연결하기 위한 창작적 수단으로서만 AI를 사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리적 가이드라인도 프로젝트 운영의 핵심이다. 제작진은 고인의 정체성과 가치가 왜곡되지 않도록 정치적·사회적 발언에 대한 오해를 차단하는 내부 원칙을 마련했고, 신해철이 남긴 철학을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가는 논조를 피하는 방향으로 편성했다. 고인의 언어가 맥락을 잃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이번 프로젝트는 음악 생태계에 대한 기여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 뮤지션에게 소개 기회를 제공하고, 주류 시장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장르와 실험적 음악을 꾸준히 조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생전에 신해철이 강조했던 음악 다양성과 창작자 지원 정신을 2025년 환경에 맞게 이어가기 위한 방향이다.

세대 간 연결도 이번 기획의 중요한 목표다. 고스트스테이션을 직접 듣던 40~50대는 당시의 경험을 다시 떠올릴 수 있고, ‘음악인 신해철’은 알고 있으나 DJ 시절을 접하지 못한 30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의 언어를 만난다. 신해철을 잘 모르는 20대에게는 새로운 음악과 창작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넥스트유나이티드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는 AI 기술을 과장하거나 부활을 시도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의 철학과 정신을 지금 세대와 연결하는 문화 실험이자, AI 시대에 문화유산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마왕’ 신해철.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걸어 오기 시작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