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어머님미안해요사랑해요

입력 2008-04-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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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우리 집 말썽쟁이 둘째아들이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을 학교에 보내려니 맞벌이를 하는 저로선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중 제일 걸리는 것이 아이의 점심 문제였습니다. 3월 한 달은 적응기간이라 일주일은 11시 전에 돌아오고, 그 후에도 점심 전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작년에 큰 애가 입학했을 때는 시어머니께서 아이들 봐주시면서 집안일도 맡아 주셨습니다. 사실 죄송한 마음은 있었지만 참 편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시어머니께 부탁을 할까 했는데, 아이가 입학할 즈음 면사무소에 다녀오시다가 다리를 다치셨습니다. 차마 아이 봐달라는 부탁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동안은 ‘어떻게든 되겠지’란 심정으로 저나 남편이나 시간 되는 사람이 아이의 점심을 챙겨줬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온 집안이 너구리 굴 마냥 연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알아봤더니 애들 둘이서 배가 고파서 뭐 좀 해 먹는다고 한 모양입니다. 냉장고의 찌개를 꺼내서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둘 다 깜빡 잊고 놀고 있었습니다. 혼을 내고 벌까지 세웠는데,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는 염치없지만 어머니께 부탁을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지난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님 모시러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어머님께 뭘 해드릴까 생각하다가 팥 칼국수를 끓여드리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시골에 갈 때면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팥죽을 한 솥 끓여주셨기에 매번 얻어만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만들어 드리고 싶어 열심히 밀가루를 치대서 반죽하고 팥을 삶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고 잠시 후 남편이 30분 정도 후면 도착한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시간 맞춰 팔팔 끓인 팥물에 칼국수를 넣고, 그렇게 달달한 팥 칼국수를 한상 가득 차려놓았습니다. 남편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머님도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어머님이 조용히 소화제를 찾기 시작하셨습니다. 뭘 잘못 드셔서 그런가 걱정이 돼서 약을 챙겨드리고 손도 따드리고 했는데 시누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를 바꿔달란 말에 체기가 있으셔서 약 드시고 주무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누이는 “얼마나 맛있는 걸 해드렸기에 그러세요?”라며 웃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팥 칼국수라고 말했더니, 시누 말이 “우리 엄니 팥죽 쑤기만 잘 쑤지 소화 안 된다고 잘 안 드시는데, 며느리가 돼서 아직꺼정 그것도 몰랐어?” 이러는 겁니다. 순간 어찌나 당황스럽고 죄송하던지… 하긴 저희 어머니는 된 밥을 지어놓은 날은 된 밥을 좋아하신다고 하셨고, 진밥을 해 놓은 날은 진밥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도 며느리가 준비한 밥상을 차마 물릴 수가 없으셔서 그걸 다 드신 것 같은데, 속으로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싶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며느리가 어머님이 좋아하신다고 도시락 반찬으로 생선 머리만 담아 드렸다고 하던데, 제가 바로 그 꼴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앞으로 어머님께서 아이들 돌봐주시는 동안에 너무 손놓고 있지 말고, 어머님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시는지 더 많이 관심 갖고 알아가야겠습니다. 광주 도천동|최슬기 행복한 아침, 정한용 왕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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