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주식에빠져변해버린아내

입력 2008-04-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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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빨리 끝나서 일찍 퇴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을 텐데… 삼겹살 좀 사서 들어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내는 일주일에 한번 동사무소 도서관에 사서로 봉사활동을 합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집에 일찍 들어가서 놀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삼겹살을 사고 장을 본 뒤 아파트 문을 열려는 찰나였습니다. 우유 주머니에 그대로 들어있는 우유와 요구르트 그리고 문 앞에 그대로 떨어져 있는 신문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바쁘기에 이런 것도 안 들여놓고 갔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저는 얼른 물건들을 집에 들여놓고, 냉장고에 장 봐온 것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 예… 그게 말입니다. 503호가 그럴 집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관리비가 벌써 넉 달째 밀려 있습니다. 소장님이 오늘까지 다 받으라고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급하게 받을 수도 없고 혹시 내일까지는 80만원이 되겠습니까?” 하고 묻더군요. 순간 저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남에게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데, 세금도 꼭 납기일 내에 내는 깔끔한 성격이었습니다. 한 달도 아니고 넉 달이라니… 꼭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아무튼 들어오기만 해 봐라! 그 돈을 다 어디다 감춰놨는지 꼭 물어 볼 테다’라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이 좀 이상했습니다. 냉장고도 한산하고, 아이들 간식도 안 보이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아내 입에서 자주 돈 얘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가끔 “자기 돈 없어? 비상금 같은 거 안 숨겨놨어?” 하고 물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온 큰딸에게 “OO야, 엄마 요즘 집에서 뭐 하시니? 너 간식은 잘 챙겨 줘?” 하고 물었더니 “엄마 나 데리러 학교도 늦게 오고, 어제는 특활 참관수업 했는데 엄마만 안 왔어. 그리고 집에 오면 매일 컴퓨터만 하고 간식도 안 줘” 합니다. “컴퓨터? 컴퓨터 뭐 하는데? 고스톱 해?” 하고 물었더니 “나도 몰라. 그냥 아무것도 안 해. 화면이 빨간색도 되고, 파란색도 되는데, 그냥 쳐다만 보고만 있어.” 이러더군요. 빨간색과 파란색? 순간 번득이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친한 동창이 천만 원을 가지고 주식인가, 펀든가를 해서 일억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저한테 늘어놓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주식에 손을 댄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돈을 가지고 시작을 한 건지… 얼마를 가지고 시작을 한 건지… 요즘 열 명 중 일곱 명이 주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경제에 ‘경’자도 모르는 이 아줌마가 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주식을 했나 기가 찼습니다. 남들이 주식해서 열 배를 번다고 해도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번 건데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돈 버는 게 어디 쉽냔 말입니까? 그 다음 날, 저는 더 일찍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서 안 왔고, 제 예상대로 집에는 아내 혼자 있었습니다. 마침 아내가 컴퓨터 모니터를 켜놓고 자리를 비워서, 컴퓨터 화면을 봤는데, 모니터에는 아내의 주식 잔고와 매매 현황이 다 나와 있더군요. 세상에나! 들어간 돈이 천만 원인데, 남아있는 돈이 삼백만 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수익률이 마이너스 70였던 겁니다. 도대체 언제 시작했는데 벌써 수익률이 저렇게 곤두박질 친 건가! 그러니 아내 생활이 온전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십 원짜리 동전만 봐도 아까워서 모두 항아리에 모아, 은행에 저금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거의 700만 원을 주식으로 날렸으니, 아마 아내 속은 그대로 새카맣게 타 들어가서 재처럼 주저앉았을 겁니다. 천만 원을 투자해, 일 억을 버는 꿈? 그런 꿈을 꾸었을 순진한 아내 생각을 하니, 안 됐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가 빨리 아내와 엄마의 자리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능란한 투자자가 되는 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절약하고 알뜰하게 살던 예전 아내 모습 그대로 빨리 돌아와 주길 바랄 뿐입니다. 부산 구포동|조충현 행복한 아침, 정한용 왕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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