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부부여행보다즐거운효도

입력 2008-04-24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예쁜 봄꽃들이 피어서 산으로 들로 소풍가기 딱 좋은,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작년은 저희 부부 결혼 10주년이었고, 저는 그 10주년 때 여행 가려고 몇 년 전부터 계속 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통장을 남편에게 당당하게 내밀고 제주도에 갈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행사에 예약까지 다 하고, 하루하루 출발일자만 기다리고 있던 차였습니다. 하루는 서울에 살고 계신 형님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동서∼ 잘 지내지? 이제 조금 있으면 아버님 칠순인데, 우리가 칠순잔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버님 환갑 때는 시할머님 편찮으셔서 아무것도 못 하고 지나갔고, 칠순 때는 여행이라도 보내드렸으면 좋겠는데… 동서 생각은 어때?”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형제가 딱 둘이라서 사실 시부모님 여행 준비하려면 부담해야 될 액수가 꽤 됐습니다. 그 돈을 내려면 제가 제주도 경비로 모은 돈을 고스란히 내놔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 돈을 꼭 쥐고 있으면 부모님께 불효를 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여행이냐, 효도냐’를 놓고 꼬박 하루를 고민했습니다. 결국 저희 여행을 취소하고, 효도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저희야 내년에 가도 되고, 그 다음에 가도 되지만, 부모님은 또 언제가실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경비로 쓰려고 따로 빼놓은 돈까지 시부모님 옷 사드리는데 다 썼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결혼 직후 저희 부부는 IMF를 맞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IMF 때문에 남편의 사업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빚을 지고, 서울에서 양주까지 저희 부부는 이를 악 물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큰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귤이 너무 너무 먹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하루는 남편을 데리고 단돈 만원을 들고 장에 나갔는데, 귤 값이 2천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살까, 말까’ 2천원을 놓고 고민하다가, 저희 부부는 그 날,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귤도 못 사고, 1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울면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갔던 저희 부부는 8년 동안 열심히 해서 빚도 갚고, 자그마한 집도 갖게 됐습니다. 아이도 하나 더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행을 가나 했는데, 여행만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늘 걱정만 끼친 시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잘 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날 저녁 남편에게 얘기를 했더니, 남편이 갑자기 술을 사와서 한 잔 하자는 겁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제게 미안하긴 꽤나 미안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고맙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제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문자까지 보냈습니다. ‘이봐. 마누라! 고맙고 사랑해! 그리고 내년엔 우리 꼭 제주도 가자.’ 그런데 남편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 저보다 일찍 퇴근해서 저녁까지 다 만들어 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꼭 안아주었는데,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남편이 내 마음을 다 알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올해 11주년 저희 부부는 또 제주도는 못 갑니다. 하지만 그 곳과 비슷하다면 비슷한,‘외도’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경남 양산|박순례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