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박소담의 귀여움에 ‘아빠 미소’ 지어봅니다

입력 2018-02-0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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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스로 분한 박소담. 솔직하고 밝은 성격, 타고난 귀여움으로 고집불통에다 괴팍하기 짝이 없는 앙리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녹여간다. 사진제공|수현재컴퍼니

■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술에 취해 스툴에 엎어진 모습 등 귀여움 만발
익숙한 얘기…극 자체보다 배우들 연기에 빠져

벼르던 연극 한 편을 대학로에서 봤습니다. ‘앙리할아버지와 나’라는 작품이죠.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 중입니다.

할아버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의 극작가가 희곡을 썼습니다. 이반 칼베라크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2015년 바리에르재단 희곡상을 탔고, 이 해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은퇴한 전직 회계사인 앙리라는 이름의 할아버지는 30년 전 상처를 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고집불통에 막말의 달인인 어르신이죠. 회계사인 아들 폴에게 회사를 물려주었는데 부자지간의 사이는 영 좋지 않습니다. 며느리 발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호시탐탐 둘을 이혼시킬 궁리를 합니다. 그런데 이 집에 젊고 발랄한 여대생 콘스탄스가 하숙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충 감이 오시죠?

이런 류의 연극은 스토리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괴팍한 남자 노인과 엽기발랄한 여대생의 동거. 처음엔 투닥투닥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정이 들고, 훈훈하면서도 감동적인 엔딩이 예고되어 있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여대생 콘스탄스 역을 맡은 박소담이 궁금했습니다. 방송 연기자로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박소담의 연기를 처음 본 것은 2016년 신시컴퍼니의 라이선스 연극 ‘렛미인’이었죠. 오랜 세월을 살아온 뱀파이어의 역할을 꽤 흥미롭게 소화했거든요. ‘언젠가 무대에서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대학로에서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에서 앙리 역을 맡은 배우 이순재와 콘스탄스 역을 맡은 배우 박소담(오른쪽). 사진제공|수현재컴퍼니


박소담의 연기는 좋기도 했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더블 캐스팅된 김슬기는 이 장면에서 어떻게 연기할까 궁금하기도 했죠. 이순재라는 ‘연기명인’과의 호흡이 만만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특히 낮술을 퍼먹는 연기가 눈에 띄었는데요. 오버하지 않은 점은 좋았지만 어딘지 살짝 적게 담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적게 담아서 ‘소담’인가요. 아재개그, 죄송합니다.

하지만 특유의 귀여움은 정말 잘 드러냈습니다. 잔뜩 취해서 작은 스툴 위에 엎어져 있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거든요. 체구가 큰 배우였다면 침대 위에 널브러지는 연출을 고려해야 했을 겁니다. 발레리가 가져 온 디저트 봉투를 들고 종종종 뛰는 장면이라든지, 하의실종 패션으로 폴을 유혹하는 장면은 재미있었습니다.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이 매우 훈훈합니다. 앙리 노인이 사망한 뒤의 에필로그 같은 것이었습니다.

앙리 할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콘스탄스가 혼자 침대에 앉아 읽습니다. 앙리 할아버지와 콘스탄스가 편지의 내용을 각자의 대사와 연기로 표현하는 연출이 절묘해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인생은 사랑하는 데에 얼마나 성공했느냐가 중요한 거야. 잘 있어라. 그리고! 감기 걸리지 마라.”

관객의 마음이 마지막으로 ‘흔들’하고 움직입니다. 앙리 할아버지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극 자체보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쪼끔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역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로군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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