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인사이드] “잘하면 티 안 나고 못하면 티 확 나고” 왼손 스페셜리스트, 그들을 말한다!

입력 2020-06-0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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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완 스페셜리스트는 경기 중후반 좌타자를 잡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다. 27개의 아웃카운트 중 단 하나를 잡기 위해서지만, 이들의 성패는 경기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두산 권혁, NC 임정호, 두산 이현승, 삼성 임현준, LG 진해수(왼쪽부터)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왼손 스페셜리스트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팽팽한 경기 중반의 승부처, 좌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하자 수비측 벤치가 분주해진다.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단 한 명의 좌타자를 잡아낸 뒤 그대로 다시 내려간다. 27개의 아웃카운트 중 단 하나일 뿐이지만, 임무를 완수하는 순간 그라운드의 공기는 달라진다. 원 포인트 릴리프, 이른바 ‘왼손 스페셜리스트’가 선사하는 짜릿함이다.

● 잘하면 티 안 나고 못하면 티 확 나고…

스페셜리스트는 마운드에 머무는 시간이 다른 불펜투수들보다도 훨씬 짧다. 이 때문에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 승리확률기여(WPA) 등 세부지표를 살펴봐도 눈에 띄진 않는다.하지만 KBO리그 최다 등판(901경기) 기록을 가진 류택현을 시작으로 가득염, 이명우(이상 은퇴) 등처럼 스페셜리스트는 팀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2020시즌에도 임현준(삼성 라이온즈), 임정호(NC 다이노스), 진해수(LG 트윈스), 권혁(두산 베어스) 등은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고충은 분명하다. 이현승(두산)은 “선발이나 마무리투수처럼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하는 자리”라고 정의했다. 진해수 역시 “스페셜리스트의 홀드나 아웃카운트는 세이브만큼의 인정을 못 받는다”며 “잘하면 티가 안 나는데 못하면 티가 많이 난다. 이런 게 숙명 같다”고 설명했다. 임정호는 “좌타자만 잡아내면 임무가 끝나기 때문에 이닝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베테랑’ 권혁은 “셋업맨, 마무리, 스페셜리스트, 패전조 등 모든 역할을 해봤다. 불펜, 특히 스페셜리스트는 ‘다음’이 없다. 공 하나를 잘못 던지면 실패한 것”이라며 “주목도는 다르지만 모두가 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할은 작은 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좌타자는 팀마다 한두 명씩 있다. 이 때문에 스페셜리스트는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반면 항상 대기 중인 경우가 잦다. 조명은 덜 받지만 몸은 고될 수밖에 없다. 임현준은 “일반 불펜투수들은 어느 시점에 투입될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보직 특성상 한 명을 상대할지, 두 명을 상대할지도 확실히 모른 채 마운드에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현승은 “이기든 지든 호출이 잦은 건 선수에게 기분 좋은 일”이라고 얘기했다.

● 스페셜한 상황을 스페셜하게 막아낸다!

미국 메이저리그(ML)는 올 시즌부터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최소 세 타자를 상대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스페셜리스트를 규정으로 금지시킨 것이다. ‘스피드업’을 위한 조치인데, 좌타자와 좌투수를 둘러싼 벤치의 머리싸움 등 야구의 흥미 요소 중 하나가 사라지는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선수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임현준은 “9회가 아니더라도 승부처는 있다. 그 순간 아웃카운트 한 개를 잡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며 “ML에서 볼 수 없는 KBO리그만의 문화로 남겨둘 수도 있다”고 말했다. 좌타자만 주로 상대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1이닝씩 책임지는 경우가 늘어난 진해수는 “좌투수가 좌타자에게 강하던 통계도 최근에는 옅어지고 있다. 이제는 투수 입장에서도 긴 이닝을 책임질 필요가 생겼다”고 강조했다.

스페셜(special). 보통의 것과 상당히 다른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임정호는 “야구를 하나의 흥미요소로 살펴보면 스페셜리스트만 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스페셜한 상황을 스페셜하게 막아내는, 그런 역할이 아닐까”라고 너스레를 떨며 자신의 역할을 정의했다.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목표는 모두가 같다. 팀 승리를 위해 눈앞의 한 타자만 생각하며 공을 뿌린다. 오늘도 음지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든 스페셜리스트에게 박수를 보낸다.

수원|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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