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내다팔아 생계유지? 노키아의 몰락

입력 2012-05-02 17: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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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시달리던 핀란드 휴대폰업체 노키아가 아껴놓았던 명품까지 팔 형편에 놓였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29일(현지 시각) 노키아가 자사의 명품 휴대폰 브랜드 자회사인 ‘베르투(Vertu)’를 사모펀드그룹 페르미라(Permira)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매각가는 약 2억 유로(한화 약 3,000억원)로 추정되며, 골드만삭스가 거래 도우미로 나선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협상 단계에 이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르투와 페르미라는 이 보도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베르투는 명실상부한 ‘진짜’ 명품 휴대폰이다. 휴대폰 한 대의 가격이 수백만원에서 몇억원을 호가한다. 명품 패션 브랜드 로고만 박히고 가격은 일반폰과 다름 없는 ‘무늬만’ 명품 휴대폰과는 다르다. 케이스는 백금으로, 버튼은 사파이어나 루비 등의 보석으로 만들어진다. 원하는 소재와 색상을 고를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버튼 하나만 누르면 호텔 예약, 생일선물 배달 등 차별화된 고급 서비스를 24시간 제공한다. 전 세계 상위 1%를 위한 휴대폰이다.


하지만 기능면에서는 일반 스마트폰보다 한참 뒤떨어진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일반 피처폰을 고집하다가 2010년이 되어서야 겨우 쿼티 키보드형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터치스크린 입력방식을 도입한 것도 한참 늦었다. 진짜 부자라면 기능보다는 브랜드의 상징성을 선택할 것이라는 베르투의 자신감이다. 실제로 베르투의 판매량은 유럽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의 신흥 부자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으로 꼽힌다.

배수진 친 노키아, 날개 단 베르투

노키아가 이렇게 건실한 베르투를 매각하려는 이유는 비용 절감이다. 매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스마트폰 시장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베르투의 판매 실적은 안정적이지만 주문제작의 특성상 큰 매출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생활이 곤궁해져 아껴뒀던 애물단지 패물을 전당포에 넘기는 상황과 같다.

2007년까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어낼리틱스(Strategy Analytic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는 점유율 8.2%로 3위에 그쳤다. 1위 삼성전자(30.6%)와 2위 애플(24.1%)에 비해 한참 못미치는 성적인데다가 그마저도 계속 점유율을 뺏기고 있다. 최근 신용등급 평가에서는 투자부적격 등급인 BB+를 받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베르투를 비롯한 비핵심 사업을 대거 구조조정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노키아는 헝가리, 멕시코, 핀란드 공장에서 수천 명을 감원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이번 베르투 매각 역시 예정된 수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쟁력을 잃은 자사의 스마트폰 운영체제 심비안마저 포기하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 운영체제를 탑재한 ‘루미아’에 올인한 노키아가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베르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다. 그동안 베르투를 옭아맸던 노키아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투는 제품, 판매점, 홈페이지 등 모든 면에서 노키아의 로고를 완전히 숨기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해왔지만 심비안 운영체제를 탑재하는 등의 제약도 있었다. 물론 베르투를 구매하는 사람이라면 스마트폰을 여러 개 사용할테고, 베르투의 가치는 실용성이 아니라 브랜드 자체와 차별화된 서비스에 있다. 그러나 경쟁 스마트폰 진영에서도 잇따라 명품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부자들에게도 베르투가 유일한 선택이 아니게 됐다.

다행히 베르투도 뒤늦게나마 터치스크린을 채택하는 등 변화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만일 노키아와 완전히 분리된다면 ‘한 물 간’ 심비안을 버리고 안드로이드나 윈도폰으로 운영체제를 바꿀 수도 있다. 그동안 안정적으로 성장세를 보여왔던 베르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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