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는 백패커들이 꼽는 국내 성지 중의 하나다. 세면대, 화장실 등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덕적도 | 양형모 기자

덕적도는 백패커들이 꼽는 국내 성지 중의 하나다. 세면대, 화장실 등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덕적도 | 양형모 기자



새벽 3시 40분, 인천 연안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도시가 아직 새벽잠에 몸을 뒤치는 시간. 터미널 건너편 김밥집과 횟집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김밥 다섯줄과 포장회 3만 원어치를 샀다. 차 안에서 김밥을 우물거리며 매표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덕적도로 가는 카페리호의 편도 뱃삯은 7만5100원. 안내된 장소에 주차하고 키를 꽂아두면 직원이 알아서 선적해 준다. 뱃삯에 대리 선적비 1만 원이 포함되어 있다. 드디어 출항. 그제서야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기분이 들면서 살금살금 졸음이 온다.


덕적도행 코리아익스프레스 카페리호의 실내. 창가 쪽은 좌석, 중앙은 누울 수 있는 구조다

덕적도행 코리아익스프레스 카페리호의 실내. 창가 쪽은 좌석, 중앙은 누울 수 있는 구조다


덕적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 섬으로, 덕적군도 중 가장 큰 본섬이다. 면적은 약 23㎢, 인구는 1800명 남짓. 중심지인 진리에는 면사무소와 학교, 하나로마트(진짜다!)까지 있다. 아담한 섬이지만 생활의 온도가 높은 곳이다.

덕적도 자연휴양림은 휴양관과 캠핑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외진 섬의 숙박시설치고는 황송할 정도로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우리는 캠핑이 목적이므로 텐트를 쳤다. 총 6개의 사이트가 있는데 그나마 4개만 운영하기 때문에 환상적인 캠핑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그런 만큼 예약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덕적도 자연휴양림의 무인 카페테리아 내부

덕적도 자연휴양림의 무인 카페테리아 내부


캠핑장 바로 아래에는 무인 카페테리아가 있다. 커피, 아이스티 같은 음료를 2500원에 판다. 에어컨에 공기청정기, 몸을 절반쯤 눕힐 수 있는 개인용 의자, 넓은 통창까지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화장실에는 비데까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여행이란 것은 설거지가 취미인 남편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비, 비, 비. 여행 첫날밤부터 비가 왔다. 섬의 비는 바람의 손을 잡고 온다. 우중 캠핑은 낭만의 극치지만, 귀곡성을 울리며 내 잠자리를 흔들어대는 바람과 함께라면 사양하고 싶다.
덕적도 자연휴양림 캠핑장의 시설은 깨끗하고 편리했다

덕적도 자연휴양림 캠핑장의 시설은 깨끗하고 편리했다


진리항의 하나로마트.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필수코스다

진리항의 하나로마트.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필수코스다


열다섯살 먹은 레트리버 같은 내 텐트는 첫날부터 고전했다. 텐트 안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결국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네이버 날씨 예보를 10분마다 들여다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튿날은 아예 종일 비가 내렸고, 우리는 텐트 안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의기소침해하지는 말자. 우리에겐 하나로마트에서 털어온 먹거리로 가득 찬 아이스박스가 있지 않은가. 캠핑 이튿날 아침 메뉴는 라면이 국룰. 점심엔 소고기를 굽고, 저녁엔 어묵탕을 끓였다.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빗소리보다 커졌다.

다음날. 소시지와 계란을 원 없이 투여한(너무 많이 샀다) 토스트로 아침을 먹고는 진리항으로 나갔다. 주말마다 진리항에 장이 선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인데, 막상 가보니 꽃게만 나와 있었다. 다시 하나로마트로. 오늘 점심은 낙지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저녁은 명태전 예정.
물이 맑고 분위기가 고즈넉한 밧지름 해변. 자연휴양림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해변이기도 하다

물이 맑고 분위기가 고즈넉한 밧지름 해변. 자연휴양림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해변이기도 하다


밧지름 해변의 적송

밧지름 해변의 적송


섬 여행의 핫스폿은 뭐니 뭐니 해도 해변이다. 덕적도에도 꽤 이름난 해변들이 있는데, 밧지름 해변이 그중 하나다. 떼부루 해변보다 훨씬 물이 맑고, 무엇보다 고즈넉하다. 백패커들이 친 앙증맞은 텐트들이 보인다. 조개가 있을까 싶었는데 실패. 대신 소라를 잡아다 삶아 옷핀으로 속을 빼먹었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니 무인카페 앞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섬 주민이 육지에서 놀러 온 지인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나름 지역 핫플 역할을 하는 듯. 핫플에 쳐놓은 우리의 노쇠하신 텐트는 이틀간의 우중 전투가 꽤 고되었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오늘 밤도 비와 바람 예보가 있는지라 텐트 위에 타프를 치고는 사방에 단단히 팩을 박았다. 어지간한 비와 바람은 충분히 막아줄 것이다.

모기향 냄새가 밴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저녁을 준비한다. 공기가 맑고 눅진하다. 멀리서 바다 물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남은 고기를 모두 가져다 불판에 올렸다.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철수하기로 결정. 이번 여행 최대의 강풍이 예고되었기 때문이다. 섬에서의 마지막 만찬이다.
진리항의 해변 탐방로. 배 타기 전에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진리항의 해변 탐방로. 배 타기 전에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덕적도에서 인천행 배를 타는 방법은 들어갈 때와 좀 다르다. 출항 몇시간 전부터 차를 몰고 나가 긴 줄을 설 필요는 없다. 대신 아침 일찍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한다. 인천항과 달리 차를 선적할 때도 직접 운전해야 한다.

아침 6시 30분, 진리항 매표소로 가 배표를 변경하고는 캠핑장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는다. 캠핑의 마지막 조찬은 이튿날의 라면처럼 늘 메뉴가 정해져 있다. ‘남은 거 몽땅 냄비에 때려넣기 찌개’다. 식사를 마치고 슬슬 철수준비를 한다. 짐을 싸 차에 싣고, 팩을 뽑고, 폴대를 접고, 텐트를 둘둘 말아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어이쿠, 비가 또 온다. 서둘러야 한다.

무인카페에서 마지막 복숭아티를 마시고, 진리항으로 나간다. 올 때 탔던 카페리를 타고 섬을 떠난다. 안녕, 덕적도.

지긋지긋한 비와 무서웠던 바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다리를 벅벅 긁게 만든 섬 모기. 덕적도 캠핑은 내게 ‘계획을 지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불편해서 더 완벽했던 여행이었다.

[여밤시] 여행은 밤에 시작된다. 캐리어를 열고, 정보를 검색하고, 낯선 풍경을 상상하며 잠 못 드는 밤.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여행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덕적도(인천) |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