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비틀쥬스’의 한 장면. 김준수(비틀쥬스)와 배우들이 강렬한 색감과 에너지로 팀 버튼식 세계를 무대에서 펼쳐낸다. 사진제공|CJ ENM

뮤지컬 ‘비틀쥬스’의 한 장면. 김준수(비틀쥬스)와 배우들이 강렬한 색감과 에너지로 팀 버튼식 세계를 무대에서 펼쳐낸다. 사진제공|CJ ENM



네 차례나 형태 바꾸는 목조주택 등
마치 살아있는 듯한 비현실적 무대
망가짐을 주저 않는 김준수의 매력

4년만에 돌아온 ‘비틀쥬스’ 엄지 척
LG아트센터서 3월 22일까지 공연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괴짜 유령의 이름이 세 번 울려 퍼지는 순간, 익숙한 현실은 빠르게 미끄러진다. 관객은 어느새 ‘기괴한 테마파크’의 입구에 서 있다. 뮤지컬 ‘비틀쥬스’가 4년 만에 돌아왔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12월 16일 막을 올린 이번 시즌은 팀 버튼 세계관 특유의 음울한 색채와 블랙 코미디를 한국 관객의 감각에 맞게 다시 빚어내며 한층 대담한 외형을 갖췄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건 크리피한 네온사인이다. 팀 버튼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색감이 객석까지 옮겨 붙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막이 오르면 리디아의 엄마 장례식이 펼쳐진다. 조문객들이 무겁게 흐느끼는 사이, 산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비틀쥬스(김준수)가 무대 한복판으로 불쑥 등장한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과장된 몸짓으로 장례식장의 공기를 단번에 비튼다. 이어 거대한 퍼펫 ‘유령을 먹는 왕뱀’이 장례식장을 휘젓는 순간, 기묘한 테마파크의 첫 문이 열린다. 시작 10분 만에 ‘이 공연은 롤러코스터다’라는 예감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김준수의 비틀쥬스는 단층적이지 않다. 끼가 넘치지만 가벼움에만 머무르지 않고, 망가짐을 주저하지 않는 과감함이 느껴진다. 리듬감 있는 말투와 빠른 호흡,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애드리브로 무대를 김준수답게 끌고 간다. 특수연출이 살짝 어긋나는 순간에도 즉석 농담으로 분위기를 되살린다. 객석에는 30~40대 여성 관객이 다수 눈에 띄었다. 환호의 강도는 공연장을 넘어 콘서트를 떠올리게 한다. 김준수의 계산된 애교는 반응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이번 시즌의 가장 큰 매력은 무대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인다는 점이다. 목조주택 세트는 공연 내내 네 차례 형태를 바꾸며 공간의 성격을 바꾼다. 평범한 부부 바바라·아담의 집에서 비틀쥬스가 장악한 기괴한 공간으로, 다시 게임쇼 무대처럼 변주되는 장면들은 4DX 어트랙션에 올라탄 듯한 ‘촉감’을 남긴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데이비드 코린스가 “집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여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뮤지컬 ‘비틀쥬스’의 한 장면. 김준수(비틀쥬스)와 배우들이 강렬한 색감과 에너지로 팀 버튼식 세계를 무대에서 펼쳐낸다. 사진제공|CJ ENM

뮤지컬 ‘비틀쥬스’의 한 장면. 김준수(비틀쥬스)와 배우들이 강렬한 색감과 에너지로 팀 버튼식 세계를 무대에서 펼쳐낸다. 사진제공|CJ ENM

배우들의 호흡도 자연스럽다. 리디아 역의 장민제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에너지로 인물의 감정을 잘 드러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객석까지 번져 왔다. 바바라·아담 역의 나하나·이율은 리디아를 보듬고 지탱하는 부부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며 극에 따뜻함을 불어넣었다. 델리아 역 윤공주의 변신도 눈길을 끈다. 정극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연달아 웃음을 끌어낸다.

이번 시즌의 뚜렷한 변화는 한국식 유머의 비중이다. 코미디언 이창호가 참여한 각색은 “똑똑! 행복이세요?”, “다시는 투명해지지 말자” 같은 2025년식 밈과 말맛을 곳곳에 심었다. 성적인 농담이 간간이 등장하지만, 과장된 세계관 덕분에 불편함보다는 통통 튀는 에너지로 남는다.

이야기가 정점으로 치닫는 장면은 넘버 ‘저 아름다운 소리’다. 비틀쥬스의 스트라이프 수트가 무대 중앙에서 번뜩이기 시작하면, 사방에서 비틀쥬스 분장을 한 앙상블이 튀어나와 군무를 펼친다. 이 순간만큼은 거대한 세트도, 퍼펫도 모두 배경으로 물러난다.

‘비틀쥬스’는 죽음과 결핍을 이야기하지만 이를 어둡게만 끌고 가지 않는다. 어둠을 웃음으로 바꾸고, 기괴함을 유머로 뒤집어 관객의 감정을 부드럽게 녹인다. 그래서 공연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의외로 가볍다. 난장판 같았던 장면, 웃기기만 했던 대사들이 ‘그런데 왜 울컥하지?’라는 질문이 되어 여운으로 남는다.

2026년 새해, 시끌벅적하고 기묘한 테마파크에서 잠시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면 비틀쥬스의 이름이 세 번 불릴 순간을 기다려볼 만하다.

뮤지컬 ‘비틀쥬스’는 3월 22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