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리포트] 모자 올림픽 메달 달성에도 어머니는 “끝까지 파이팅”을 외쳤다

입력 2024-08-02 08: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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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아 삼성생명 감독(오른쪽)은 과거 유수의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건 한국배드민턴의 레전드다. 2024파리올림픽에서 아들 김원호(왼쪽)가 혼합복식 결승에 진출하며  ‘모자 메달리스트‘가 됐다. 내심 아들이 결승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목에 걸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해 2022항저우아시안게임 이후 귀국해 기념촬영하고 있는 길영아-김원호 모자. 사진제공 | 삼성생명 배드민턴단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오른쪽)은 과거 유수의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건 한국배드민턴의 레전드다. 2024파리올림픽에서 아들 김원호(왼쪽)가 혼합복식 결승에 진출하며 ‘모자 메달리스트‘가 됐다. 내심 아들이 결승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목에 걸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해 2022항저우아시안게임 이후 귀국해 기념촬영하고 있는 길영아-김원호 모자. 사진제공 | 삼성생명 배드민턴단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지난달 26일(한국시간)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길영아 삼성생명 여자팀 감독(53)은 덤덤하게 기자의 인사에 답했다. 당시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회장을 비롯해 백종현 배드민턴국가대표팀 전력강화위원장과 각 팀 감독들은 2024파리올림픽 참관을 위해 출국길에 오르고 있었다.

길 감독 역시 인천국제공항 안재창 감독, MG새마을금고 김성수 감독 등과 함께 대표팀 응원은 물론, 소속팀 선수들의 경기력을 확인하기 위해 파리행을 앞두고 있었다. 여자단식 안세영(22·세계랭킹 1위)과 김가은(26·17위)은 물론, 남자팀 복식자원 김원호(25), 강민혁(25), 서승재(27)까지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터라 길 감독이 신경 쓸 선수가 많았다.

이중 가장 금메달 확률이 높은 선수는 ‘셔틀콕 여제’ 안세영이었지만, 기자의 질문은 김원호로 향했다. 길 감독의 1남1녀 중 장남인 김원호는 어린 시절부터 ‘길영아의 아들’로 유명세를 탔다. 어머니가 1992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복식 동메달, 1996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과 여자복식 은메달을 수확한 레전드였기 때문에 배드민턴계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비범한 혈통과 유명세에 걸맞은 성장을 보이며 국가대표 붙박이 멤버로 자리잡았다. 과거 남자복식과 혼합복식을 모두 소화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김원호는 파트너 정나은(24·화순군청)과 함께 혼합복식에만 출전했다. 김원호-정나은의 세계랭킹은 8위다.

길 감독은 파리올림픽 전 “올림픽은 선수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을 아들에게 전했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도 해보고 “부상이나 체력저하는 선수라면 이겨내야 한다”는 말도 전했다. 그래서인지 출국 전 기자의 인사에도 덤덤하게 답하며 섣부른 기대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길 감독도 아들의 활약에 울고 웃는 평범한 어머니였다. 특히 지난해 최솔규(29·요넥스)와 출전한 2022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자 기쁨과 아쉬움이 모두 담긴 반응을 보인 게 대표적 사례다. 은메달은 분명 호성적이지만 아시안게임은 금메달만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길 감독은 “(김)원호가 수비와 네트 플레이에 강점이 있었지만, 힘이 부족했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대회가 열리지 않으면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할 시간이 많았고, 이 때 힘이 붙으면서 공격력이 늘었다”며 “(최)솔규의 서브와 후위공격, 원호의 장점이 맞물려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호평했다. 그러면서도 “이럴 때 금메달을 따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나”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2022항저우아시안게임 당시 아들 김원호를 응원하고자 항저우를 직접 찾은 길영아 감독. 2024파리올림픽에서도 현지에서 응원을 이어 간 길 감독은 아들이 은메달을 넘어 금메달을 가져오길 기대했다.  사진제공 | 삼성생명 배드민턴단

지난해 2022항저우아시안게임 당시 아들 김원호를 응원하고자 항저우를 직접 찾은 길영아 감독. 2024파리올림픽에서도 현지에서 응원을 이어 간 길 감독은 아들이 은메달을 넘어 금메달을 가져오길 기대했다. 사진제공 | 삼성생명 배드민턴단


단순 병역특례 혜택을 받는 걸 넘어 아들이 대를 이어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28년 전 김동문과 함께 혼합복식에 나선 자신처럼 아들도 혼합복식에 출전했기 때문에 내심 메달을 기대했다.

결국 아들이 기대에 부응했다. 파리올림픽 개막과 동시에 난적들을 격파한 김원호-정나은은 2일(한국시간) 라샤플레아레나에서 벌어진 대회 혼합복식 4강에서 팀 선배 서승재-채유정(29·인천국제공항·2위)을 게임스코어 2-1(21-16 20-22 23-21)로 꺾었다. 2~3게임이 모두 듀스까지 흘러가며 체력부담이 컸고, 3게임 16-13에서 김원호가 구토를 하는 등 힘겨운 경기가 이어졌지만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엄청난 반전이었다. 대회전까지 상대전적 5전패 압도적 열세였고, 서승재가 강민혁과 출전한 남자복식 8강에서 고배를 마신 터라 맹렬하게 경기에 임할 것으로 보였다. 배드민턴계 관계자들도 “서승재-채유정의 상대 전적이 우세인데다 함께 훈련한 김원호-정나은의 수를 알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우세로 평가받는 쪽이 승리한다”며 “대회 이전부터 만약 혼합복식에서 메달이 나온다면 서승재-채유정이 따낼 것으로 기대됐다”고 서승재-채유정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김원호-정나은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 남은 목표는 모자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넘어 금메달리스트로 거듭나는 것이다. 길 감독은 “많은 분들께서 축하해주셔서 감사한다. (김)원호와 (정)나은이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길 기대한다”고 웃었다.

김원호-정나은은 이날 밤 같은 장소에서 정쓰웨이-황야총(중국·1위)과 금메달을 놓고 다툰다. 정쓰웨이-황야총은 직전 대회인 2021년 2020도쿄올림픽에서 세계랭킹 1위를 달리고도 결승에서 왕일위-황동핑에게 덜미를 잡혀 은메달에 머문 바 있다.


파리|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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