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마시는와인]라벨은‘와인이력서’

입력 2008-03-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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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정유진, 나이는 33세다.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바로 와인이다. 모임에 나가면 종종 와인을 마시는 일이 있는데 이 때마다 나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는게 불편하다. 남들은 품종이 어떠니, 빈티지가 어쩌니 얘기하는데 나는 빨간 색은 레드 와인, 하얀색은 화이트 와인으로 구분하는게 고작이다. 그래서 중대한 결심을 했다. 수소문 끝에 고교 동창인 김은정이 소믈리에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었다. 고민을 들은 김은정이 고맙게도 흔쾌히 와인 과외 교사가 되겠다고 한다. 앞으로 내 인생은 달라질거다. 와인과 함께.》 ○ 첫 번째 과외-카르멘 까베르네 소비뇽 리저브 약속 장소인 와인바에 김은정이 미리 앉아있다. “고마워, 은정아. 역시 너밖에 없다. 바쁠 텐데 이 무지한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내주고.” “무슨 소리, 친구란 이래서 필요한거 아냐. 그리고 난 너한테 와인을 가르치려고 하는게 아냐. 와인을 즐기는 법을 공유하려는 거지.” 김은정이 와인을 주문한다. 투명한 잔에 붉은 색의 와인이 채워진다. 마셔보라고 권한다. 난 무의식처럼 잔을 몇 차례 돌려 향을 맡고 목으로 액체를 넘겼다. “어때? 블랙베리향과 토스트 향이 느껴지지 않아? 바디(body)도 비교적 묵직하고 말야.” “바디? 그게 뭐야?” “물을 마실 때와 우유를 마실 때 입안을 채우는 느낌에 차이가 있지. 그게 바로 바디의 차이야.” 와인 병을 자세히 바라봤다. ‘카르멘’(Carmen)이라는 큰 글씨 아래 ‘리저브’(Reserve)라는 단어, 숫자 ‘2005’와 ‘까베르네 소비뇽’(Carbernet Sauvignon)이 적혀있다. 이게 도대체 뭐람. “‘카르멘’은 뭐고, 밑에 적힌 것들은 또 뭐야?” “와인의 라벨에는 와인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들어있어. ‘카르멘’은 와인 회사의 이름이야.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회사지. 다음으로 ‘리저브’는 와인의 숙성 정도를 말하는 건데 오래 동안 숙성시킨 거라고 이해하면 돼. 같은 회사 와인이라면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것보다 ‘리저브’라고 적힌 게 좋은 거겠지. ‘2005’는 ‘빈티지’를 표시한거야. 2005년에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마지막으로 ‘까베르네 소비뇽’인데 이건 와인을 만든 포도 품종을 말하는 거야. 레드 와인을 만드는 대표적인 품종으로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에서 많이 재배하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와인 라벨에 이렇게 많은 정보가 있을 줄 몰랐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KIS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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