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김정현-부친 친구 홍성길씨 ‘핑퐁 父情’ 불편한 몸 불구 운전사로 코치로 ‘10년 뒷바라지’“몇 년 전 세계대회 때 너 응원 가려고 준비 다 해놨는데 막판에 네가 떨어지는 바람에 못 갔다.” “언제요, 언제? 나 2006, 2007, 2008년 다 나갔는데?” “2004년 선발전에서 너 탈락했잖니.” 15일 오전 인천 서구 원당동 대한항공 탁구단 체육관. 국가대표 김정현(23·대한항공)이 홍성길(40)씨에게 “그 때 이후로는 계속 나갔다”고 반격을 해댄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세대 차이를 넘어선 친구처럼 친근하다. 홍성길씨는 김정현의 아버지와 동갑내기 절친한 친구이자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 10년 이상 그녀 바로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 장애인 탁구계 실력자 홍씨, 김정현의 재능을 알아보다
홍성길씨는 서울 북가좌동에서 ‘길현탁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탁구장 이름은 홍성길씨의 ‘길’에 김정현의 ‘현’을 따서 지었다.
홍씨는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지만 장애인 탁구에서는 알아주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김정현의 집에서 홍씨의 탁구장은 불과 2분 거리. 초등학생 시절 김정현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으레 탁구장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곤 했다. 어느 날 홍씨의 눈에 따분해하는 김정현이 들어왔다. “너도 한 번 해볼래?” 우연찮게 쥔 탁구라켓. 하지만 첫 스윙부터 범상치 않았다.
“재능이 엿보였어요. 아기 때부터 뼈가 굵어 어른들이 안아주기를 꺼려할 정도였죠.” 그 날 이후 김정현에게 탁구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됐다. 그리고 얼마 후 출전한 꿈나무 탁구대회에서 김정현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유망주들을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주변을 놀라게 했다.
○ “합숙 빼는 조건 걸고 탁구 시켰죠”
대회 후 주변에서 김정현을 키워보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다. 홍씨가 김정현에게 물었다. “탁구선수 할 수 있겠어?” 김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탁구부가 있는 명지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날이 1995년 5월 30일. 홍씨는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즈음 명지중학교에서 입학 제의가 들어왔다. 홍씨는 학교를 찾아가 “합숙생활을 빼 준다면 보내겠다”고 못 박았다. “틀 안에 아이를 가둬두는 것이 싫었어요. 어린 나이에 합숙을 하면 아무래도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새벽 훈련을 위해 아침 일찍 김정현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데려와 아침을 먹이고, 다시 학교에 데려다준 후 오후 훈련이 끝나면 데려오는 일이 시작됐다. 하루에 두 차례씩, 6년 동안 홍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김정현의 운전기사 노릇을 했다. 지금도 대회가 열리면 한 편에서 김정현을 응원하고 있는 홍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저, 탁구장은 누가 관리하죠?” “하루 이틀도 아닌데요 뭐. 회원들이 탁구장에 왔다가 휠체어가 안 보이면 으레 정현이 응원 갔겠구나 생각해요.”
인천=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