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순의밤은따뜻했네

입력 2009-04-14 15: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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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흡!’하고 빨아들이는 들숨조차 음악처럼 들린다. 거친 듯, 쉰 듯하면서도 융단처럼 부드럽다. 악보 속의 빽빽한 음표들은 연주자의 호흡에 녹아 회장의 허공을 느릿느릿 떠돈다. 지난 해 소노리테 공연 때도 그랬지만, 바수니스트 이지현의 연주는 틀에 박히지 않아 좋다. 격식을 내려놓지만 여전히 우아하다.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미소를 짓는다. 직접 만나보면 시종 재치가 넘치는 사람일 것만 같다. 13일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던 이지현씨의 바순 독주회장을 찾았다. ‘오로지 바순!’이란 공연 콘셉트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지현이란 이름이 반갑다.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졸업한 이지현은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원주시향의 수석연주자로, 앙상블 디아파종과 목관5중주 소노리테 멤버로 활동 중. 한국예종, 서울예고, 건국대, 강릉대 등에 출강하며 음표를 아끼듯 시간을 쪼개며 살고 있다. 이날 독주회는 이지현씨의 세 번째 독주회였다. 세 번째 독주회를 기점으로 이씨는 나름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매 독주회마다 시대별 바순음악을 펼쳐 보일 생각이다. 이날 연주회는 그 출발점으로 ‘바로크 바순’이 테마다. 앞으로 네 번에 걸쳐 고전과 낭만, 근대, 현대의 바순을 들려주는 여정이 준비돼 있다. J. 베소찌의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텔레만의 소나타, 반할의 바순 협주곡이 이날의 프로그램. 여기에 국내 작곡가 이소연씨의 ‘목관4중주를 위한 Spring Breeze’가 국내 초연됐다. 하루 내내 쌓인 몸과 마음의 ‘젖산’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편안한 연주회였다. 마지막 곡인 반할의 협주곡에서 이지현씨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꺼내 놓았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대신 한 문정재의 피아노도 파랗게 불을 뿜었다. 감정의 과잉이 없다. 바순의 온기 넘치는 음 하나 하나가 투명하고 담백하게 울린다. 2악장 아다지오. 바순은 역시 느린 악장에서 제 맛이 난다. 마치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일몰을 등지며 포구로 돌아오는 어선의 고동소리를 듣는 것 같다. 소라고둥에 귀를 댄 것처럼 자꾸만 아련해진다. 이지현씨는 원주시립교향악단의 수석 연주자를 맡고 있다. 곧 시작될 교향악축제로 인해 오케스트라는 연일 맹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 역시 이씨는 원주로 ‘출근’을 했다가 연주회를 위해 부랴부랴 서울로 되돌아와야 했다. “너무 힘들었다. 잘 끝나서 다행이다. 앙코르 곡을 할 때 눈물이 다 났다”면서 이씨는 환하게 웃었다. 바순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악기다. 바순의 애절하면서도 아련한 음은 옛 기억을 자꾸만 끄집어낸다. 이지현은 노력하는 연주자다. 오늘보다는 내일의 모습이 더 기대되는 사람이다. 10년 뒤, 그녀의 연주를 들으며 2009년 4월 13일의 밤을 회상하는 일은 꽤 근사할 것 같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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