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 “강원래에 ‘돈 내놔라’ 이혼 요구해…”
방송인 김송이 남편 강원래가 교통사고를 당한 당시를 회상했다.
김송은 지난 25일 방송된 EBS1 ‘인생이야기 파란만장’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세 가지 기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 번째 기적은 2000년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찾아왔다. 당시 스타 강원래와 비밀 연애 끝에 결혼을 앞두고 뛸 듯이 기뻤다는 김송. 그는 “강원래 오빠와 결혼해 현모양처가 되는 게 내 소원이었다. 강원래 닮은 예쁜 딸도 낳고 싶었다. 그런데 그 행복도 잠시였다. 3개월 후 강원래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한 달 반 동안 의식이 없었다. 깨어나기만을 바랐다”며 “목뼈 3개가 부러져서 병원에서 머리에 못을 박았다. 할로베스트라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아팠으면 그때 정신이 들었다. 의식이 돌아왔고 사람들을 알아보더라. 첫 번째 기적이었다. 죽지 않고 깨어났으니 내가 평생 간병하면서 살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김송은 “자신만만했다. ‘내 사랑의 힘으로 죽을 때까지 간병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문득 ‘나 아직 젊은데, 평생 어떻게 살지? 장애인이 된 남편과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안 쉬어졌고 원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김송은 “당시 정신과를 알았다면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고 살아났을 텐데 그것조차도 말할 수 없었다.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있었으니까 나는 천사여야만 했고 그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살아야 했다. 벗어나고 싶고, 이혼하고 싶고, 살고 싶지 않은데 혼자 끙끙 앓고 살았다. 술도 안 마시는데 위궤양이 스무 개 넘게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편에게 퍼붓고 싸웠다. ‘이혼해’ ‘위자료 내놔’ ‘돈 내놔’라며 집에서는 때려 부수면서 싸우면서도 방송에서는 ‘우리 부부 행복하게 잘 살아요. 지켜봐주세요’라고 해야했다.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면서 “그런데 어느날 눈을 떴는데 벗어나고 싶었던, 지옥이었던 집구석이 감사함으로 바뀌더라. 감사함은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거더라.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나에게 두 번째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 기적은 선물처럼 다가온 아이였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8번 시도한 끝에 지난 2014년 6월 득남한 강원래♥김송 부부. 김송은 “우리 가정에 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2001년부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했다. 한 번 하면 금방 될 줄 알았다. 육체적으로도 아픈 과정인데 실패하면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원망의 대상이 또 남편이 되더라. 내가 삿대질하고 쌍욕을 퍼부으니 남편은 ‘때려치워라. 누가 아이 원한다고 했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중단했다가 5년만인 2012년 남편이 다시 해볼 것을 제안했다”고 회상했다.
김송은 “남편이 이미 사고로 인해 불임 판정을 받았다. 기형 정자였고 늙은 난자여서 힘든 상황이었다. 2013년 10월 12일 토요일 오전 10시경 병원에서 1차 피 검사 성공했다는 연락이 왔다.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찾아온 기적이었다. 아이의 태명도 ‘선물’이었다”고 밝혔다.
동아닷컴 연예뉴스팀 sta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방송인 김송이 남편 강원래가 교통사고를 당한 당시를 회상했다.
김송은 지난 25일 방송된 EBS1 ‘인생이야기 파란만장’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세 가지 기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 번째 기적은 2000년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찾아왔다. 당시 스타 강원래와 비밀 연애 끝에 결혼을 앞두고 뛸 듯이 기뻤다는 김송. 그는 “강원래 오빠와 결혼해 현모양처가 되는 게 내 소원이었다. 강원래 닮은 예쁜 딸도 낳고 싶었다. 그런데 그 행복도 잠시였다. 3개월 후 강원래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한 달 반 동안 의식이 없었다. 깨어나기만을 바랐다”며 “목뼈 3개가 부러져서 병원에서 머리에 못을 박았다. 할로베스트라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아팠으면 그때 정신이 들었다. 의식이 돌아왔고 사람들을 알아보더라. 첫 번째 기적이었다. 죽지 않고 깨어났으니 내가 평생 간병하면서 살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김송은 “자신만만했다. ‘내 사랑의 힘으로 죽을 때까지 간병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문득 ‘나 아직 젊은데, 평생 어떻게 살지? 장애인이 된 남편과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안 쉬어졌고 원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김송은 “당시 정신과를 알았다면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고 살아났을 텐데 그것조차도 말할 수 없었다.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있었으니까 나는 천사여야만 했고 그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살아야 했다. 벗어나고 싶고, 이혼하고 싶고, 살고 싶지 않은데 혼자 끙끙 앓고 살았다. 술도 안 마시는데 위궤양이 스무 개 넘게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편에게 퍼붓고 싸웠다. ‘이혼해’ ‘위자료 내놔’ ‘돈 내놔’라며 집에서는 때려 부수면서 싸우면서도 방송에서는 ‘우리 부부 행복하게 잘 살아요. 지켜봐주세요’라고 해야했다.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면서 “그런데 어느날 눈을 떴는데 벗어나고 싶었던, 지옥이었던 집구석이 감사함으로 바뀌더라. 감사함은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거더라.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나에게 두 번째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 기적은 선물처럼 다가온 아이였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8번 시도한 끝에 지난 2014년 6월 득남한 강원래♥김송 부부. 김송은 “우리 가정에 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2001년부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했다. 한 번 하면 금방 될 줄 알았다. 육체적으로도 아픈 과정인데 실패하면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원망의 대상이 또 남편이 되더라. 내가 삿대질하고 쌍욕을 퍼부으니 남편은 ‘때려치워라. 누가 아이 원한다고 했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중단했다가 5년만인 2012년 남편이 다시 해볼 것을 제안했다”고 회상했다.
김송은 “남편이 이미 사고로 인해 불임 판정을 받았다. 기형 정자였고 늙은 난자여서 힘든 상황이었다. 2013년 10월 12일 토요일 오전 10시경 병원에서 1차 피 검사 성공했다는 연락이 왔다.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찾아온 기적이었다. 아이의 태명도 ‘선물’이었다”고 밝혔다.
동아닷컴 연예뉴스팀 sta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