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명 짧은 패스 시퀀스, 득점 확률 직결… 5명 이상은 ‘경기 조절용’
국가대표 302경기 데이터 분석…상위 1% 국제학술지 ‘Chaos’ 게재



그라운드 위 11명의 선수가 주고받는 유기적인 패스 연결이 물리학의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정량적으로 규명됐다.

인하대는 물리학과 이재우 교수 연구팀이 축구 경기에서 나타나는 패스 패턴을 분석해, 패스 연결 구조와 공격 효율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규명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스포츠 데이터를 단순한 기록이 아닌,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동적 네트워크(Dynamic Network)’로 해석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3~4인 짧은 패스’는 창, ‘5인 이상 긴 패스’는 방패
이 교수 연구팀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980년부터 2010년까지 치른 302경기와 최근 국제대회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다. 연구 결과, 패스에 참여하는 인원수(시퀀스 규모)에 따라 그 역할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4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짧은 패스 전개는 전진 속도가 매우 빠르고 방향성이 강해 실제 득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핵심 공격 패턴’으로 분석됐다. 반면 5명 이상의 선수가 참여하는 긴 패스 전개는 직접적인 타격보다는 공 점유율을 유지하며 경기를 조절하고 상대의 빈틈을 찾는 데 더 큰 역할을 했다.

● 현대 축구의 변화, ‘긴 패스’도 전략적 빌드업으로
연구팀은 현대 축구와 과거 데이터의 비교를 통해 흥미로운 전술적 변화도 포착했다. 과거 한국 대표팀은 상대의 압박을 피하기 위한 ‘수동적 수단’으로 긴 패스를 주로 사용했으나, 최근 세계적인 강팀들은 수비 대형을 흔들고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전략적 빌드업’ 과정으로 긴 패스를 적극 활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재우 교수는 “축구와 같은 팀 스포츠는 다수의 플레이어가 상호작용하는 대표적인 복잡계 시스템”이라며 “이번 연구는 물리학적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축구 전술의 구조적 원리를 정량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 물리학·수리과학 상위 1% 학술지 게재
이번 연구 결과는 물리학 및 수리과학 분야 세계적 권위지인 ‘카오스, 솔리톤스 앤드 프랙탈스(Chaos, Solitons & Fractals)’ 최신호에 게재됐다. 해당 학술지는 관련 분야 상위 1%에 해당하는 영향력을 가진 저널이다.

이번 연구에는 인하대 물리학과 학부생 출신인 박준서 씨(제1저자, 현 고려대 석사과정)와 조창희 연구원, 손승우 한양대 교수 등이 함께 참여해 스포츠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하대 이재우 교수팀이 발표한 ‘물리학적 패스 네트워크 분석 모델’은 현대 축구의 핵심인 데이터 사이언스를 한 단계 진화시킬 강력한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인하대 이재우 교수팀이 발표한 ‘물리학적 패스 네트워크 분석 모델’은 현대 축구의 핵심인 데이터 사이언스를 한 단계 진화시킬 강력한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 분석 : 그라운드 위 ‘복잡계 물리학’… K리그·EPL 전술 판도 바꿀까?
축구는 더 이상 선수들의 투지와 감각에만 의존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인하대 이재우 교수팀이 발표한 ‘물리학적 패스 네트워크 분석 모델’은 현대 축구의 핵심인 데이터 사이언스를 한 단계 진화시킬 강력한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이 모델이 K리그나 프리미어리그(EPL) 등 실제 프로 무대에 적용될 경우 예상되는 변화는 무엇일까.

◆ ‘감’이 아닌 ‘수치’로 보는 실시간 전술 지도
가장 큰 변화는 벤치의 의사결정 방식이다. 지금까지 감독들은 경험에 의존해 교체 타이밍을 잡았지만, 이 모델을 적용하면 현재 우리 팀의 패스 흐름이 ‘득점 직전의 날카로운 3~4인 시퀀스’인지, 아니면 ‘정체된 점유율 유지용’인지를 실시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계 화면에 표시되는 단순 패스 성공률을 넘어, 공격의 전진 속도와 방향성을 수치화함으로써 “지금 전술이 통하고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 해답을 즉각적으로 얻게 된다.

◆ 상대 팀의 ‘전술적 급소’ 찾아내는 정밀 타격
상대 팀 분석에서도 혁신이 예상된다. 물리학의 네트워크 이론은 팀 내에서 패스 연결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노드(Node·그라운드 위의 각 선수)’를 정확히 찾아낸다.

상대 팀의 특정 선수를 차단했을 때 전체 패스 효율이 급격히 무너지는 지점을 특정할 수 있다면, 더욱 세밀한 맞춤형 압박 전술 수립이 가능해진다. 이는 상대의 빌드업 체계를 무력화하는 ‘정밀 타격형’ 수비 전술로 이어질 수 있다.

◆ ‘언성 히어로’의 가치 재발견… 스카우팅 시스템의 진화
이 모델은 선수 가치 평가의 기준도 바꿀 것으로 보인다. 골이나 도움 같은 가시적인 스탯은 없지만, 패스 네트워크 내에서 공격의 전진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숨은 조력자(Unsung Hero)’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력이 부족한 구단들이 저평가된 우수 자원을 발굴하거나, 팀의 고유한 전술 구조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적생을 선별하는 ‘머니볼’ 시스템의 완성형이 될 수 있다.

◆ 팬들을 위한 ‘스마트 중계’ 시대 개막
시청자들의 관전 재미도 극대화된다. 중계방송 중 “현재 A팀의 패스 패턴은 전형적인 득점 확률 상위 5%의 동적 네트워크를 형성 중입니다”와 같은 해설이 가능해진다. 데이터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은 팬들에게 경기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콘텐츠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

인천 ㅣ 박미정 스포츠동아 기자 localk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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