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송 “♥노사연=로또, 맞는 게 하나도 없어” 난리

입력 2021-08-24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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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송이 어린 시절 추억부터 노사연과 일화까지 깊이 있는 토크를 선보였다.

24일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에서는 외조의 왕에서 가수로 돌아온 남자 이무송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공개됐다.

이날 MC 김재원 아나운서는 "(노사연 씨와) 묘하게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행복하게 잘 사시는 것 같다"고 말했고, MC 김솔희 아나운서도 "(두 분이) 성향이 정말 다른데 알콩달콩 잘 지내신다"고 공감했다.

이에 이무송은 "정말 어디 가서 늘 이야기하지만 로또다.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성향이 너무 다르다. 잘 보셨다. 나는 좀 조용한 편이다. 방송에서는 신나니까 말을 많이 하지만 평소에는 조용하다. 아내와 처가는 늘 에너지가 넘치셔서 목소리도 우렁차시고 되게 벅차더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김재원 아나운서는 "이무송 씨 부부가 지인과 함께 식사하는데 여성분이 깻잎이 잘 못 떼자 이무송 씨가 그 깻잎을 떼드립니다. 이 일로 노사연 씨가 노발대발하신 사건이 있다"고 운을 뗐고, 이무송은 "나는 정말 화기애애하게 식사하는데 좀 불편해 보이잖아요. 누가 봐도. 밥 먹다가 집에서도 눌러주기도 하는데"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김학래는 "잘하셨어요. 저는 해줘요. 깻잎이라는 게 묘해서 안 떼어줘서 두 장을 한 번에 먹으면 너무 짜"라고 이무송에 공감했고, 임미숙은 "그런데 그 여자분을 왜 계속 보고 계시다가 깻잎을 떼줘요"라고 발끈했다.

이무송은 "그랬더니 집사람이 한 다섯 장을 먹든 열 장을 먹든 당신이 왜 신경 쓰냐는 거다. '알아서 밥을 더 먹든지 물을 마시겠지'라고 하더라. 그러고 나서 길가에서 고등학생 애들이 '아저씨 깻잎 떼주지 마세요'라고 하더라 그때 그게 대한민국의 정서라는 걸 깨달았다. 화기애애한 배려였는데 내가 그 여자만 본 게 아니다.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게 매너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깻잎 안 먹는다"고 덧붙여 웃음을 유발했다.

또 이무송은 나이가 계속 바뀐다는 말에 "연예계에서 다들 사정이 있고 나 같은 경우는 노사연 씨가 연상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는 그런 게 많지 않아서 관계성을 위해 왔다 갔다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명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서양 나이, 동양 나이 다 다르니까 나이 문화가 좀 묘하다"고 공감했다.

이무송은 요즘 봉준호 감독의 연락처를 수소문하느라 정신없다고. 이무송은 "예전에 책을 읽었는데 2012년이 되면 음악 멜로디, 코드 진행의 오리지널리티가 다 끝난다더라. 그 이후 음악은 어디선가 카피한 음악이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고 늘 생각했다. 새로운 멜로디 플랫폼이 필요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식으로 음계가 새로 나올 수 있다. 영상 쪽에서도 새로운 비전을 봤다. 지금부터 10년 안에 있을 수 있는 우리 삶의 포인트, 문화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 비전, 라이프스타일이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무송은 다시 태어나도 노사연과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에 'X' 표시를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무송은 "사실 나보다는 집사람이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훨씬 스케일이나 모든 것이 크고 풍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살면서 더 큰 분들, 훌륭한 분들을 만나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자 김재원 아나운서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기는 했는데 좀 궁색하네요"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무송은 "한평생을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했으니 또 다른 경험을 한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게 집착이나 소유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것들이 충족되지 않을 때 부부싸움을 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27살이다. 자기 길을 계속 연구하고 만들어가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고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방송에서는 학창 시절부터 작사, 작곡, 연주에 능통한 음악 천재 이무송의 놀라운 과거가 공개됐다. 이무송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계기가 아버님이 교편을 잡다 외항선을 타게 됐다. 몇 달씩 못 돌아오실 때도 있었는데 돌아오실 때마다 LP판 몇십 장, 백 장까지 가져오셔서 어려서부터 듣다 보니 외국 음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가 1970년대 미국 음악이 쏟아져 들어올 때였다. 서양 음악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고, 고등학생 때 밴드 결성해서 공연도 하러 다니고 하이틴 스타였다"고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무송이 졸업한 미국 대학 도서관에는 이무송관도 있다고. 이와 관련 이무송은 "그 당시 나 나름대로 음악 활동을 왕성하게 할 때다. 대학가요제도 미국 대표로 나와서 동상도 받고, 중간중간 고등학교 때 음악 하던 게 있어서 한국 와서 김창완 씨 만나서 앨범도 제작하게 됐고, 새로운 음악 장비가 나오면서 여러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뮤지컬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학교에서는 그게 자랑스러웠나 보다. 외국 분들은 나 같은 경우가 흔하지 않은 상황이다. 도서관 입구에 제 앨범과 동상 받았던 것, 작사, 작곡 악보들 전시해 놨다. 굉장히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무송은 2000명 앞에서 우리 민요 공연을 하고 그 내용이 지역 신문에 대서특필 된 적도 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동아닷컴 연예뉴스팀 sta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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