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이슈] 트롯 독재의 시대, 이경규·유재석의 근심

입력 2021-01-22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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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닷컴DB

‘듣기 좋은 말도 하루 이틀’이라고들 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질리도록 듣다 보면 싫어지는 법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반발심이 생기기에 탄생한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듣기 좋은 음악들은 어떨까. 만약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트롯이 예능과 만나 1년이 훨씬 넘도록 예능계를 점령 중이라면?

최근 TV조선과 MBN은 갑작스러운 소송전에 돌입했다. 지난 18일 TV조선은 참가자 가운데 우승자를 뽑아 상금을 수여하는 방식의 트롯 오디션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시리즈와 MBN의 ‘보이스트롯’과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어 표절 소송을 진행할 것임을 밝혔다.

여기에 MBN의 트롯 파이터에 대해서도 오디션 상위 진출자들이 모여 경연을 벌인다는 점에서 ‘사랑의 콜센타’와 포맷이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저작권 침해 관련 소장을 발송하고 재방송 금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임을 시사했다.

사진=TV조선, MBN


이런 두 방송사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요즘 많이 쓰이는 신조어 중 하나인 ‘자강두천’이 절로 떠오른다.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싸움이라는 의미인데 제3자인 시청자 입장에서는 표절을 판가름할 중요한 요소인 ‘독창성’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따름이다.

사진=KBS

사진=MBC


이처럼 두 방송사 외에도 요즘 방송가, 정확히 예능계는 트롯 열풍 아니 광풍(狂風)이다. SBS ‘트롯신이 떴다’는 이미 두 시즌을 방송했으며 MBC는 ‘트로트의 민족’, ‘최애 엔터테인먼트’ 등을 방송하며 트롯 광풍에 후발주자로 올라탔다. KBS 역시 ‘트롯 전국체전’을 방송 중이다.

사진=SBS


뿐만 아니라 이 트롯 광풍의 선두자인 TV조선은 ‘뽕숭아 학당’, ‘사랑의 콜센타’ 등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을 이용한 파생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현재 방송 중인 ‘미스트롯2’가 끝나면 이 기세를 몰아 비슷한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것이 눈에 훤하다.

이처럼 현재의 예능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트롯 독재’로 불러도 무방하다. 버라이어티 예능, 공개 코미디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으며 오로지 ‘잘 될지도 모르잖아’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트롯 예능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사진=카카오M


이 같은 상황에서 22일 남성 매거진 MAXIM과의 인터뷰에서 이경규가 남긴 말은 의미심장하다. 예능계의 오리지널리티(독창성)가 사라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요즘 트로트 가수 가요제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다. 자기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니까. 왜 창작 가요제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이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현재 데뷔 40년차에 접어든 이경규가 카카오M과 손을 잡고 모바일 예능에 도전하고 있음을 상기하면 그의 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공개 코미디의 부재 혹은 멸망, 버라이어티가 사라져 차세대 예능 주자들이 발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롯 예능의 범람은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던 트롯이 빛을 보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여기에 유재석 역시 최근 SBS ‘런닝맨’,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MBC ‘놀면 뭐하니?’ 등을 통해 현재 예능계가 비기형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암시했다.

사진=SBS 홈페이지 화면 캡처


그는 ‘런닝맨’의 기획의도를 새로 쓰는 시간이 다가오자 ‘버라이어티 예능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을 제일 서두에 먼저 언급한다. 그리고 이 기획의도 말미에 ‘특히 이 프로그램은 예능의 많은 재미 요소 중 오로지 웃음에 집중한다’고 강조한다. 멤버들 소개에서 재치를 발휘했던 유재석이 기획의도에서 만큼은 웃음끼를 쏙 뺐다는 점은 그가 바라본 지금의 예능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사진=MBC


이에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에서 ‘동거동락’을 통해 새로운 예능 스타들이 발굴되곤 했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카놀라유라는 우스꽝스러운 부캐릭터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모습이 묘하게 안쓰러운 이유를 바로 이런 까닭이다.

또한, 유재석은 최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SBS의 마지막 공채 개그맨 김민수를 만나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찾는 사람들’ 폐지의 아픔을 위로했다. 그는 “열심히 안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당연히 열심히 했겠죠. 정말, 너무, 일주일 내내, 온통 개그만 생각하며 살았겠죠”라고 위로한다.

그의 말대로 예능계의 지금 현상은 절대 젊은 개그맨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트롯 가수들이 물 들어올 때 너무 노를 저어서 생긴 일이 아니다. 굳이 책임을 묻자면 오로지 수익에 집중한방송사들과 젊은 PD들의 새로운 시도와 생각을 흥행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로 막는 고위층의 마인드 탓일 것이다.

이런 기형적 구조를 만들어 내고도 이들은 “요즘 예능계에 신선한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며, “왜 요즘 젊은 시청자들은 TV를 보지 않을까?”, “어쩌다가 지상파가 케이블과 종편에 밀렸을까?”, “왜 TV 예능보다 유튜브만 보는 걸까?”를 걱정한다.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 눈을 감는 것일까. 지금의 흐름을 보면 눈을 감고 있는 후자 쪽일 가능성이 크다. 예능계의 새로운 인물을 원하면 또 그저 그런 트롯 프로그램 만들 돈으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면 되고, 젊은 시청자들을 원하면 그들의 입맛에 만든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유튜브를 이기고 싶다면 적어도 매주 방통위에 불려가는 한이 있어도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과연 예능계에 새로운 신인, 새로운 유행어가 탄생하는 속도보다 트롯 신동이 더 많이, 더 빠르게 생산되는 지금의 현상을 정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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