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채의사커에세이]주말에축구장가볼까

입력 2008-04-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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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주말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K리그 7경기 중에서 뭘 봐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수도권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경기장은 4군데, 그 곳에 경기가 없으면 다른 경기를 TV로 볼 수도 있다. 사실 TV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리버풀의 유럽축구연맹(UEFA)컵 준결승 경기를 보고 싶어도 ‘리얼 플레이어’란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 라디오 중계를 듣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유럽의 5대 리그를 안방에서 편안히 즐길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서 국내 리그 경기를 보는 사람 보다 TV로 해외축구를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게 나쁘다는 얘긴 아니다. TV로 축구를 보면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나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인스턴트 리플레이가 있다. 축구장에선 팬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것보다 심판의 권위를 지켜주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을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경기장에선 (특히 육상 트랙이 있는 종합경기장에선) 관중석에서 선수들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TV에선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다양한 앵글과 클로즈업을 제공하는 센스 있는 프로듀서들 덕분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HDTV와 입체 음향 시스템으로도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느끼기 위해 ‘리얼 팬’들은 경기장을 찾는다. TV에서 하는 축구 중계는 팬들의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지만 실제로 운동이 되는 부분은 리모콘을 누르는 손가락 밖에 없다. 컬트 영화 한 편 보는 셈 치고 일단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나랑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생각보다는 많아 보여서 다행이다. 우선 3등석에 자리를 잡는다. 주머니 사정 때문에 학생 시절부터 앉았던 자리가 내 자리로 굳어졌다. 2층에 앉으면 우선 양팀의 포메이션이 한 눈에 들어와서 좋다. 윙백이 측면 공격에 가담하는 것도 여기서 보면 정말 역동적이다. 터치라인 쪽에서 볼 때만큼 오프사이드 여부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도 좋은 건 골대 바로 뒷쪽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골 장면을 생생히 볼 수 있는 거다. 흔히들 '펠레 스코어'라고 하는 3-2 경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난 그렇지 않다. 사실 그런 경기를 본 적도 별로 없지만. 5-0처럼 일방적인 결과보다는, 내용만 재미있다면 0-0 무승부도 괜찮은 것 같다. 결론은 이렇다. 무조건 K리그 경기를 보러 가자는 건 아니다. 지난 주말 잠실에서 열린 K3리그 서울유나이티드의 홈경기도 재미있었다. 주변에서 펼쳐지는 경기가 있다면 그냥 한 번 가서 보는 건 어떨까. 행복은 TV에 나오는 세상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FIFA.COM 에디터 2002월드컵 때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안내를 맡으면서 시작된 축구와의 인연. 이후 인터 넷 세상에서 기사를 쓰면서 축구를 종교처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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