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하키대표팀,‘찬밥’먹지만자부심은‘스틱처럼꼿꼿’

입력 2008-04-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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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VS 45만 2006년 독일 월드컵, 11명의 태극전사들이 4강 신화를 일궜다. 그건 2002년 월드컵이 아니냐고? 물론 2002년에도 4강이었다. 누구나 기억하는 축구 이야기가 아니라 ‘아는 사람만 아는’ 하키 이야기다. 2002년 말레이시아하키월드컵, 한국은 역대 최초로 4강에 올랐다. 남국의 날씨 만큼이나 현지 반응은 뜨거웠지만 귀국과 동시에 찬밥 신세가 됐다. 2006년 9월, 한국은 독일에서 다시 한번 월드컵 역사를 썼다. ‘180:45만의 대결.’ 한국과 독일의 예선 마지막 경기 후 독일 신문의 기사제목이다. 양 국가의 등록선수 숫자를 비교한 것이었다. 3만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은 5000석을 증원했는데도 만원.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양 팀은 예선성적 3승 2무로 사이좋게 4강에 올랐다. 이미 한국은 세계 최강 네덜란드를 3-2로 꺾은 돌풍의 핵. 독일 관중들은 한국대표팀의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4만 가까운 관중들이 기립박수로 한국을 격려했다. 스틱을 잡으며 처음 느껴 보는 짜릿한 경험. 주장 서종호(28)는 “정말 고마웠다. 머리가 쭈뼛 섰고, 몸 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거렸다”고 회상했다. 프레스센터에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렸다. 물론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독일기자가 물었다. “한국의 등록선수(성인)가 정말 180명인가?” 조성준(47) 감독의 답변에 장내가 술렁였다. 한국은 4강에서 호주에게 패하며 결승진출이 좌절됐다. 우승컵은 독일의 차지. 하지만 가장 큰 화제를 모은 팀은 단연 한국이었다. ‘총알처럼 빠른 팀’이라는 찬사와 함께. ○골든 제너레이션(Golden Generation) 포르투갈 청소년 축구 대표팀은 1989년과 19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2연패했다.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등은 10년 뒤 유로 2000 4강의 주역이 됐다. 이들은 골든 제너레이션(Golden Generation)이라고 불렸다. 한국남자하키는 현 대표팀이 황금세대다. 조성준 현 남자 대표팀 감독은 1997년 주니어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최초로 파키스탄, 인도, 말레이시아 등 전통의 강호를 눌렀다. 1998년에는 주니어월드컵대회에 나갔다. 이 때 주전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현 대표팀의 주축.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때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 감독은 “설움은 있을지언정 필드 안에서는 자신감이 넘친다”면서 “세계 최강 팀과 붙어도 1골 차 이상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서종호는 2007년 세계올스타에 뽑힌 센터포워드. 독일 리그까지 진출한 세계 최정상급 골게터다. 유효식(26)은 작은 신장(171cm)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스틱 기술로 상대 수비를 헤집는다. 두꺼운 가슴까지 디에고 마라도나를 닮았다. 장종현(24)은 최종수비수를 보면서 세트플레이시 전담 히터로 나선다. 조 감독은 “페널티코너시 성공률은 40에 이른다”며 극찬했다. 수려한 외모까지 ‘프리킥의 제왕’ 데이비드 베컴을 닮았다. 3월 28일 성남 하키장, 대표팀은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7-0으로 이겼다. 스쿱(공을 스틱 헤드에 걸어 들어올리는 기술)으로 공을 넘기면 스틱기술로 수비수를 제친다. 골문 근처에서는 공을 잡는 법이 없다. 무조건 터치슛(패스된 공을 방향만 살짝 바꾸는 기술)이다. 폴란드의 마체이 마투츠인스키 감독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팀을 위해, 나라를 위해, 자신을 위해!” 경기를 마친 뒤 선수들이 향한 곳은 인근 모텔. 각 방에는 빨래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비좁은 복도에는 선수들의 장비가 쌓여있다. 아시안 게임 2연패, 월드컵 2회 연속 4강. 1시간 전에 봤던 화려한 경기력과 숙소가 대비된다. “이거 워낙 누추해서….” 대표팀 최고참 골키퍼 고동식(35)이 재빨리 방문을 닫는다. 누구에게는 ‘4년마다 한 번씩 보는 스포츠’고, 누구에게는 ‘취재의 대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삶 자체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혹시라도 자존심이 상할까 한 마디 물어보는 것도 조심스럽다.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이제 그런 얘기하기도 싫어요. 나아지는 것도 하나 없는 걸요.” 수비수 김병훈(26)이 어렵사리 속내를 드러냈다. “운동선수라고 하면 연봉부터 물어보는 시대잖아요. 그럴 때 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죠.” 필드에서와는 다른 모습이다. “축구는 월드컵 16강하면 병역혜택 받잖아요. 돈도 많이 벌고. 우리는 월드컵 4강을 2번이나 했는데….” 선수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2006년 아시안 게임 때 금메달 포상금으로 받은 돈은 1인당 50만원이란다. “한 턱 내라”는 친구들의 성화에 몇 번 모임을 갖다보니 지출이 더 커졌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는 미드필더 홍은성(25)의 씁쓸한 미소. “팀을 위해, 나라를 위해, 자신을 위해! 한국 파이팅!” 경기 시작 전 빙 둘러선 대표팀이 외치는 구호다. “거짓 없는 구호에요. 프로선수들처럼 메달 딴다고 몸 값 올라가는 것도 아니거든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가장 순수하게 내 꿈과 나라의 명예를 위해 뛸 수가 있는 겁니다.” 쿠베르탱도 울고 갈 진정한 아마추어리즘이 여기 있었다. ‘FA 대박’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단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보상. 성남=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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