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의야구속야구]발빠른야구가팬을사로잡는다

입력 2008-04-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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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다’는 말 자체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몰라도 올 프로야구에서는 눈에 띄게 매 게임마다 훔치기(도루)가 넘쳐나고 있다. 선수들이 부상도 마다하지 않고 한 베이스를 더 가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도루’하면 누구나 해태 타이거즈로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사실 해태뿐만 아니라 초창기 프로야구 선수들은 누구라도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를 선보였다. 기술은 지금보다 부족했을지 몰라도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정신력과 투지는 지금보다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팬들은 프로야구에 열광했고, 프로야구가 빠르게 정착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선수들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도루 시도도 급격히 줄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국내 프로야구에 FA 제도가 도입되면서 ‘몸이 재산’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자칫 팀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다 심각한 부상에 처하면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FA대박의 기회는 날아갈 수밖에 없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선수로서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도루가 줄면서 야구의 재미도 반감되고, 이때부터 팬들도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모든 팀과 선수, 코칭스태프가 도루를 화두로 삼고 있다. 아웃카운트 희생 없이, 안타 하나 없이 득점할 수 있고, 방어의 핵이라는 투수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게 바로 도루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은 기동력과 무관하지 않다. 프로야구의 경향도 파워를 앞세우기보다 섬세한 스몰야구를 선호하는 추세다. 선수들도 다시 의식이 전환돼 그라운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공격쪽에서 보면 도루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상대투수는 퀵모션으로 투구를 해야 한다. 느린 변화구보다는 빠른 직구 위주의 투구패턴으로 바뀌게 된다. 공격쪽에서는 이를 읽고 타격할 수 있다. 포수는 1구, 1구마다 빠른 송구를 위해 엉덩이를 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투수의 제구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모든 야수들 또한 한 템포 빠른 수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실수를 남발할 수도 있다. 이런 계산으로 감독들은 빠른 주자를 선호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발만 빠르다고 누구나 도루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반 얘기다. 롯데는 100m 한국신기록(10초34)을 보유한 한국 육상 단거리 스타 서말구 선수를 선수 겸 코치로 입단시킨 적이 있다. 도루 전문 대주자로도 가능하고,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노하우와 기술까지도 전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를 중용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러면서 당시 팬들도 야구와 육상은 별개의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야구의 센스와 육상의 센스는 분명 다르다. 같은 스타트라도 야구는 상대투수의 투구폼을 빼앗으면서 치고나가는 동물적인 감각을 요구하며, 육상은 정적인 상태에서 스타트하기 때문이다. 도루를 잘 하는 선수는 눈썰미가 있어야 하고 대담성도 필요하다. 상대투수의 투구폼과 포수의 송구능력을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처음 보는 투수라면 습관 등을 메모하기도 한다. 투수에 따라 스타트를 뺏을 수 있는 특징 하나를 잡아내기도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선수들은 도루를 하기위해 비디오 앞에 앉아서 상대투수의 폼에 대해 논하고 있을 것이고, 반대로 투수는 자신의 투구폼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 어느 한 곳도 소홀할 수 없다. 아무튼 도루가 늘면서 야구장을 떠났던 팬들도 덩달아 늘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김시진 스포츠동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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