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칭프로도전기]벙커빠지고…러프‘허우적’“악!”

입력 2008-04-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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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강호의 무림과 같다. 한 타 한 타에 일희일비하며 오직 한 사람, 강자만이 필드를 지배한다. 8년의 수련을 거친 신출내기가 겁도 없이 강호 속으로 뛰어 들었다. 14일 오전 6시30분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GC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많은 고수들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홀 더블보기가 불운의 징조 골프의 영원한 테마는 도전이다. 새로운 코스의 정복과 100타-90타-80타를 깨고 ‘싱글’을 향한 집념이 늘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USGTF 티칭프로 테스트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도 그 중 하나다. 골프 입문 8년 만에 싱글 진입까지 했지만 골퍼로서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무모한 도전 인줄은 알지만 골프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신청서를 냈다. 기자로서 티칭프로의 테스트를 체험하고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취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준비가 많았으면 좋으련만 매일 야근에 전날은 제주도에서 대회 취재를 마치고 밤 늦게 도착해 새벽 일찍 영종도로 나가는 힘든 일정 속에 치른 시험이었다.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기록했던 내 스코어는 78타. 합격 기준에 딱 한 타 오버였다. 베스트 스코어 이상을 내야 합격하는 상황 속에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테스트 참가자 가운데서 주눅 들기는 싫었다. 고수처럼 보이기 위해 클럽으로 허공을 가르며 폼을 잡았다. 아마 내 스윙을 보고 몇몇 참가자들은 움찔했을 것이다. 참가자 4명씩 한 조를 이뤄 필드로 나갔다. 모두 ‘파이팅’을 외쳤지만 저마다 속내를 달랐을 것이다. 오전 7시 36분, 마침내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드라이버를 꺼내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 섰다. 반사적으로 클럽을 휘둘렀다. 다행히 첫 티샷은 잘 날아갔다. 잔뜩 폼만 잡고 첫 홀부터 슬라이스가 나면 어떡하나 불안했는데 다행이었다. 5번 우드로 친 세컨드 샷도 무난했다. 이때까지 딱 좋았다. 순간 ‘오늘 일 내겠는 걸’하는 생각이 스쳤다. 누가 그랬던가. 골프가 마음처럼 됐다면 벌써 그만뒀을 거라고. 머릿속에서는 늘 2온 1퍼트의 버디를 그리지만 현실은 3온 2퍼트의 보기가 기다린다. 그것도 잘해야 보기다. 100m를 남기고 친 어프로치가 그린에 못 미쳤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보기만 했어도 실망이 덜 했을 텐데 그린에서는 어찌나 힘이 나던지 쓸데 없는 장타로 스리퍼트를 해 더블보기로 홀아웃했다. 불길했지만 스스로 위로했다. 아직 17개의 홀이 남아 있다고. 다행히 2번 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긴 버디 퍼트를 놓쳤지만 파 퍼트를 집어넣어 첫 홀에서의 불안한 스타트를 만회했다. ○벙커에 빠지고, 러프에서 갈팡질팡 경기가 중반으로 이어질수록 더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잘 맞은 아이언 샷은 벙커에 빠졌고 어쩌다 한번 버디 찬스를 잡으면 스리퍼트로 보기를 기록하면서 자멸했다. 평소 실력대로라면 이처럼 많은 스리퍼트를 남발하지 않았을 텐데 긴장한 탓에 퍼트감이 무뎌졌다. 왜 큰 경기에서 선수들이 무너지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선수들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해도 이해할 것 같았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불운은 계속됐다. 러프에서 허우적거리는 건 예삿일이었고, 워터해저드에 빠져 벌타까지 먹었다. 짧은 퍼팅마저 홀을 외면하는 게 그동안 나보다 하수였던 상대의 지갑을 가볍게 했던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스코어 카드에 늘어가는 건 보기였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전반을 6오버파로 마무리했다. 남은 9홀에서 언더파를 치지 않으면 프로의 꿈을 접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기적을 바라며 다음 홀로 이동했다. 함께 플레이한 동반자들도 다같이 ‘파이팅’을 외치면서 다시 한번 전의를 불살랐다. 후반 들어 샷은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불안하던 아이언 샷의 그린 적중률이 높아지면서 종종 버디 기회를 맞았다. 아슬아슬하게 홀을 빗나갔지만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운명을 가른 것은 14번 홀 파3 홀에서의 티샷이 빗맞았다. 운 좋게 데굴데굴 굴러 온그린했다. 홀과의 거리도 멀지 않았다. 잘 하면 눈먼 버디로 기사회생할 찬스였다. 우승 퍼팅을 남겨 둔 프로처럼 그린을 사방으로 살피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는데,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신중했던 게 오히려 화가 됐다. 5m도 안 되는 퍼팅이 턱없이 짧아 홀 1m 앞에 멈춰 섰다. 두 번째 퍼팅까지 실수하면서 보기라는 최악의 결과를 나았다. 망연자실. ‘OK’ 거리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면서 전도유망(?)하던 아마추어 골퍼의 꿈은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내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오거스타의 신이 우즈를 버리고 트레버 이멜먼을 선택한 것처럼 이날 “골프의 신도 내 편이 아니구나”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멀고도 험한 프로의 길 결국 최종 스코어는 86타. 기준에 훨씬 못미쳤다. 탈락의 아쉬움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함께 경기에 나선 동반자 모두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지 못했다. 프로지망생 L씨는 이번 도전이 네 번째로 필사적인 각오였다. 하지만 또 다시 탈락하며 다음 도전을 기약했다. 테스트에만 나오면 평소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며 그는“역시 프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했다. 다른 두 명의 동반자는 너무도 아쉽게 탈락했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파를 기록하면 합격할 수 있었지만 워터 해저드와 벙커를 오가며 통한의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2타 차의 아슬아슬한 탈락이었다. 마음 같아선 봐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웠다. 프로 자격증 취득 후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다던 K씨는 “평소와 달리 긴장되고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이 부족해 실수가 잦았다”면서 안타깝지만 다시 도전할 뜻을 내비쳤다. 한국의 프로 자격증은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이번 테스트에는 멀리 중국과 태국에서도 참가했다. 한국에서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하면 중국이나 태국 등에서 티칭프로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참가자들의 설명이다. 프로의 꿈은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최연소 합격의 영광을 누린 팽준상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에 불과했다. 63세의 안주선씨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최고령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여성 출전자도 8명이나 됐다. 티칭프로는 주로 레슨을 목적으로 이용되지만 아마추어 골퍼들 중에는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참가하는 경우도 많다. 도전을 통한 성취감 획득이 가장 큰 이유다. 실제로 이번 테스트에서도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성취감을 위해 출전한 골퍼들이 많이 있다”고 협회 관계자는 귀띔했다. ○도전 후기 비록 탈락의 쓴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소홀한 준비로 무모하게 도전한 꼴이 됐지만 이번 티칭프로 도전을 통해 내 실력을 검증했고 부족한 점을 파악했다. 거창하지만 골프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실패가 두려웠다면 애초부터 칼을 뽑지도 않았을 것이다. 7전8기의 자세로 티칭프로에 합격하는 소식을 전할 때까지 도전은 계속된다. 티칭프로는… 프로골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대회 참가를 목적으로 한 투어프로와 레슨을 목적으로 한 티칭프로이다. 흔히 골프장에서 쓰는 레슨프로는 가르치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티칭프로는 연습장이나 골프아카데미 등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격증으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와 미국골프지도자연맹(USGTF) 등의 단체에서 매년 2∼4회 이상 개최한다. USGTF는 미국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티칭 전문 단체로 한국지부(회원수 6000여명)는 아시아지부 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높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티칭프로 테스트는 실기와 이론을 모두 합격해야 자격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합격 시까지 소요되는 비용은 대략 250만원 안팎으로 실기테스트 참가비와 교육비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최근에는 각 단체별로 자체 대회를 개최하면서 티칭프로도 상금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해외 골프장과 제휴를 통해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주영로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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