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독주눈엣가시‘비신사적이미지’덧칠…SK는“땀의1등”정면돌파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닙니다. 인식입니다.”
노엄 촘스키와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추앙받는 조지 레이코프는 명저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통해 왜 서민층을 대변하는 미국 민주당이 부자의 이익에 충실한 공화당과의 선거전에서 번번이 패하는지를 분석했다.
레이코프의 결론은 '프레임(frame)', 즉 대중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믿고 싶어하는 바를 믿고, 그 신념에 따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공화당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 이미지, 구호에서 대중의 마음을 선점했다는 논리다. 예를 들자면 ‘감세=선’이란 이미지를 덧씌우는 세금 구제(tax relief)가 대표적이다.
프레임 이론을 작금의 프로야구로 돌리면 SK를 둘러싼 두산, LG 등의 갈등 전선은 헤게모니 쟁탈전이란 본질로 연결된다. ‘SK의 2루 커버가 타당하냐 아니냐’는 표면적 구실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말해 SK가 6∼7등이면 나오지도 않았을 얘기다.
거슬러 올라가면 작년에도 SK는 ‘고교야구’, ‘재미없는 야구’, ‘빈볼야구’ 등 타 구단의 프레임 견제를 당했다. 아무리 SK가 사안별로 논리적 반박을 하려해도 사람들이 ‘왜 SK만 사사건건 충돌이야’라며 그렇게 믿어버리는 한, 이미지 손상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2년 연속 SK의 1위 독주가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비신사적 야구’란 프레임의 덧칠이 가해졌다. 여기에 김재박 LG 감독의 “일본인 코치” 운운 발언은 ‘한국 대 일본’의 대립 구도를 연상시켰다.
이에 대해 SK 프런트는 “더 이상의 1등 흡집내기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아울러 문제의 당사자로 지목된 후쿠하라 코치를 전면에 내세워 논리적, 기술적 반박을 했다. LG, 두산에 대해선 ‘약자의 논리’, ‘난국 타개책’이라 맞대응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예전과 똑같았다.
그러나 SK 프런트의 달라진 점은 ‘SK의 땀’이란 새로운 프레임을 들고 나온 대목이다. 민경삼 SK 운영본부장은 “SK의 1등이 그냥 된 것인 줄 아는가. 우리 선수들이 손바닥이 벗겨질 정도로 연습한 대가다. 다른 구단은 과연 그만큼 연습하고 SK를 공격하는가”라고 토로했다.
노력하는 1등을 보고 자극받는 대신 ‘뒷다리 잡기’에 혈안인 야구계의 폐쇄적 편가르기 풍토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이탈리아의 좌파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프로야구는 SK 대 반SK의 ‘헤게모니 격전장’에 비견된다. 김성근 감독의 독특한 야구 철학과 여기서 비롯된 소장파 감독과의 세대갈등, 인적구성에 있어 SK는 타 구단과 비교해 꽤 이질적인 지향점을 공유한다. 여기에 1등 SK의 압도적 독주 채비로 SK 대 반SK 전선은 더욱 가속화됐다.
일단은 봉합된 양상이지만 어느 쪽이 이슈를 선점하고, 누구의 언어로 말하느냐를 두고 전개되는 헤게모니 쟁탈전은 완료가 아니라 잠복에 가깝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