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인간승리’…감격적인1717일째만의승리

입력 2008-05-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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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승리-.’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듯하다. 적어도 삼성 조진호(33)에게는 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첫 승보다도 값진 승리였다. 2004년 가을 프로야구계를 온통 뒤흔든 ‘병역비리’에 연루돼 8개월간 옥살이를 피할 수 없었고, 이후 2년 2개월간은 공익근무를 마쳐야 했던 조진호다. 1998년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하고 미국 땅을 밟았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이처럼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으리라고는 미처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풍운아’ 조진호가 1717일 만에 감격의 승리를 안았다. 그것도 지옥의 9연전 일정 때문에 ‘땜질’ 성격이 짙었던 4일 대구 한화전에서다. 조진호은 이날 6이닝 동안 21명의 타자를 상대해 4사구 없이 4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해 SK 소속이던 2003년 8월 22일 문학 롯데전 이후 장장 4년 8개월 12일 만에 승리투수의 기쁨을 누렸다. 1군 마운드에 오르기는 2003년 10월 1일 역시 문학 롯데전 이후 4년 7개월 3일 만이다. 총 투구수 80개 중 직구가 43개, 슬라이더가 19개, 체인지업이 11개, 커브가 7개였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4km로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스트라이크존 좌우 외곽을 콕콕 찌르는 제구력이 수반됐기에 위력이 배가됐다. 홈플레이트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변화구도 일품이었다. 삼성 유니폼을 정식으로 입은 때는 지난해 10월이었다. 지난해 가을 시즌 종료 직전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투수층이 유독 두꺼운 삼성이라 계약은 수월치 않았다. 테스트 후 1개월의 시간이 흘러 반쯤 희망을 접고 있었을 무렵 운명적인 전화 한통이 걸려왔고 결국 계약금 없이 연봉 5000만원의 조건으로 사자군단의 일원이 됐다. 4년만에 다시 정식 유니폼을 입었지만 공백이 길었던 만큼 당장 1군에 올라올 수는 없었다. 시범경기에 몇차례 등판하고는 스프링캠프부터 줄곧 2군에서 생활했다. 이날 승리의 발판이 된 1군 승격은 지난달 30일 이뤄졌다. 5월 3일부터 예정된 ‘지옥의 9연전’에 내세울 선발투수감이 마땅치 않았던 팀 사정 덕분이었다. 2군에서의 마지막 등판이었던 지난달 27일 경산 KIA전 때도 6이닝 6안타 1볼넷 3실점으로 썩 신통치는 않았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경기 전 선동열 감독도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는다. 2군에서 올린 보고서만 봤을 뿐 직접 투구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경기 후에는 “사실 5이닝 2실점 정도면 족하다고 예상했다. 그런데 낮게 제구되는 좋은 공을 뿌렸다. 오늘처럼만 던지면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시켜도 좋을 것 같다”고 후한 점수를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덕아웃에서 마무리 오승환이 경기를 매조지하는 장면을 초조하게 지켜본 조진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도 던져봤지만 오늘처럼 긴장 많이 하면서 떨린 적도 없었다. 사실 밤잠을 설쳤다”며 “병역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렇고, 어머님이 가장 마음을 졸이셨는데 승리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병역비리에 연루돼 힘들었을 때도) 포기란 단어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늘처럼 관중석을 꽉 메운 팬들의 함성을 늘 그리워했다”며 삼성에서 제2, 아니 제3의 야구인생을 펼쳐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대구 |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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