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주인없는태평양에‘SK깃발’유감

입력 2008-05-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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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주인은 누구인가? SK 와이번스의 4일 ‘태평양 유니폼 데이’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초유의 파격이었다. 모그룹인 SK 대신 ‘태평양’이란 문자를 가슴 전면에 내세웠다. ‘SK’는 소매 부분에 작게 처리됐을 뿐이다. 물론 태평양 그룹은 스폰서 비용을 협찬하지 않았다. 이어 SK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태평양’ 명칭을 써도 되는지 유권해석까지 구했다. 태평양의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가 소멸된 데다 신생팀 우리 히어로즈가 현대를 계승하지 않고, 창단 형식을 밟았기에 KBO는 주인이 없어진 태평양의 명칭에 대한 권리를 SK가 쓰더라도 무방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SK는 옛 태평양 응원가와 영상까지 구해 경기 전 전광판으로 틀었다. 유니폼도 제작해서 일반 팬들에게 판매했다. 또 경기 직전엔 김성근 감독 이하 전 선수단이 기념 촬영을 했다. 이 행사가 왜 하필이면 히어로즈전에 맞춰졌는지에 대해 류선규 마케팅 기획 파트장은 “어린이날 연휴가 끼어있는 5월 3∼5일 히어로즈전을 관중몰이 기회로 봤다. 마침 이만수 수석코치가 ‘3연전이 매진되면 또 하나의 퍼포먼스를 펼치겠다’고 선언해 프런트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기획하다가 생각이 여기에 미쳤다”라고 밝혔다. 즉, 히어로즈가 SK ‘태평양 데이’의 상대가 된 것은 우연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태평양과 영욕을 함께 했던 히어로즈의 고참급 선수들이나 코치들은 현실에 한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의식한 듯 류 파트장은 “‘태평양 데이’가 곧 SK가 태평양의 권리를 계승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같은 인천 연고팀이란 연결 고리가 있기에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이벤트로 ‘태평양의 승계자=SK’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소지가 있다. SK는 창단 당시 그 어느 팀도 계승하지 않는 길을 택한 바 있다. 또한 상대가 다른 팀도 아닌 히어로즈였기에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디서도 ‘태평양의 역사 소유권’을 주장하기 힘든 절묘한(?) 타이밍에서 SK는 ‘태평양 데이’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SK의 반대편에서 문제 제기할 이해 당사자가 사라졌다고 사안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태평양의 주인은 누구인가? 문학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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