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경기취소돼도슬라이딩쇼가있기에…

입력 2008-06-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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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6시35분 사직구장. 두산-롯데전 개시 5분 만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후 내내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기어이 일을 낸 것이다. 경기 중단이 선언됐고, 선수들은 덕아웃으로 철수했다. 그래도 관중석은 여전히 활기찼다.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은 6000여 팬들이 전광판에 상영되는 영상을 따라 응원을 펼치기 시작했다. 비 내리는 텅 빈 그라운드에 카림 가르시아-조성환-강민호-이대호의 응원가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결국 7시4분에 노게임이 결정됐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아쉬움의 함성. 롯데 손광민과 이원석이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위해 그라운드를 돌기 시작했다. 너무 천천히 뛰었기 때문일까. 주장 정수근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이들을 막아섰다. 다시 전력질주로 한 바퀴. 이번에도 정수근이 저지했지만 옆으로 피하면서 슬라이딩에 성공했다.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하이라이트가 남아있었다. 덕아웃에서 정수근의 손에 이끌려 나온 선수는 다름 아닌 ‘강림신’ 가르시아. 우천 취소 세리머니는 주로 신진 선수들의 몫이다. ‘외인’인 용병들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달랐다. 함께 나온 정수근과 쑥덕거리더니 갑자기 1루 쪽으로 출발했다. 동시에 정수근은 3루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더 빨리 홈을 밟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했다. 승부근성이 발동한 가르시아는 베이스조차 밟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렸고, 거침없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정수근도 가르시아의 반대편으로 몸을 던졌다. 팬들은 ‘가르시아송’을 부르며 그들의 ‘팀플레이’에 화답했다. 폭우가 쏟아져도, 야구가 취소돼도 사직구장의 축제는 끝날 줄 몰랐다. 사직|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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