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맨으로새출발하는박찬호

입력 2008-07-04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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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이하 한국시간) 다저스의 선발 클래이튼 커쇼가 제구력 난조로 부진하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는 3.1이닝을 2안타 1실점으로 막아 구원승을 따냈다. 6월 28일 LA 에인절스 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6이닝 4안타 무실점으로 선발승을 얻었고, 7월 2일에는 휴스턴 원정 경기에 나서 6-6 동점이던 9회부터 연장 10회까지 마운드를 이어가며 다저스의 역전 홈런 덕분에 승리투수가 됐다. 스윙맨,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이 말은 야구에서 즉 주로 불펜에서 활동하며 긴 이닝을 소화하는 롱 릴리프로 나서다 선발투수에 구멍이 났을 때 임시 선발로 등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투수들을 가리킬 때 쓴다. 박찬호는 올 시즌 4승 2패로 LA 다저스 투수들 가운데 7승을 거두고 있는 채드 빌링슬리, 5승의 데릭 로우, 브레드 페니에 이어 구로다 히로키와 함께 다승 공동 4위에 올라 있다. 23번의 등판 중 선발로 3차례, 나머지 20번을 불펜 투수로 나와 유일한 선발 승을 거두었던 지난달 28일 경기에서 6이닝으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으며, 연장 10회에 나와 알폰조 소리아노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됐던 5월 29일 시카고 컵스 전에서 0.1이닝으로 가장 적게 던졌다. 지난달 16일 인터리그 디트로이트 원정 경기에서 1.1이닝 8안타 5실점으로 한 순간에 방어율이 1.96에서 2.94로 올랐지만 그 경기를 제외하고는 본인이나 조 토레 감독에게 불만족스런 경기도 없었다. 에인절스 전 선발 승 이후 휴스턴과의 경기에 다시 불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는 동점으로 이어진 9회말 2사 1루에서 3번 타자 랜스 버크만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박찬호는 10회에도 계속 마운드에 올라 선두타자 카를로스 리를 안타로 내보냈지만 후속 타자들을 간단히 요리한 뒤 11회 공격에서 제프 켄트의 미닛 메이드 파크의 기형적인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 덕에 승리투수가 됐다. 하지만 휴스턴의 10회말 공격은 심심했고, 승리투수가 된 것은 박찬호가 마운드에 있는 사이에 결승점이 나온 덕분으로 행운이 작용했다고 봤을 때, 역시 흥미로운 것은 9회였다. 9회말 투아웃. 그냥 평범한 타자인 헌터 펜스가 기이한 타구로 내야안타를 쳐내 출루한 뒤 나온 거포. 대게 만화에서의 경우라면 이럴 때 꼭 주인공이 나와 끝내기 홈런이나 안타로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팬들을 열광시키곤 하던데... 자막에서는 버크만이 박찬호를 상대로 통산 22타수 8안타(.364)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경기를 자기 손으로 끝낸 적이 없었던 버크만에게 지금이 그의 빅리그 역사 상 최초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적절한 상황에 복선까지 적당히 깔아준 베리 굿 타이밍? 그러나 반대로 박찬호가 버크만에게 승리를 거두었고, 휴스턴 팬들이 바라던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 “이건 만화가 아니라 현실이니까!”라고 하면 너무 재미없는 대답일까? 여기서 굳이 말도 안 되는 만화 얘기까지 들먹이는 건 그 만큼 그 당시의 대결구도가 꼭 투수와 포수가 무슨 공을 던질까를 얘기하는데 2장, 던지는 데 1장, 분명 생각할 겨를도 없을 짧은 시간인데 무슨 공을 던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는데 또 1장, 배트에서 ‘깡’소리 나는데 1장, 날아가고 잡히는데 2장을 할애하며 결과를 궁금하게 하는 독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야구만화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방송 자막 뿐 아니라 박찬호와 버크만이 서로 타이밍을 뺏기지 않기 위해 계속 타임을 요청하고, 지난 경기에서 그토록 호흡이 잘 맞던 러셀 마틴이 몇 차례나 마운드에 올라올 정도로 긴박했던 흐름이 결정적인 상황에 강타자와 상대하는 배터리의 어려움을 잘 드러내는 한 장면이었다. 역시 구종선택에서의 견해 차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마틴이 비록 짧은 이닝을 던지기 위해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3일밖에 쉬지 못한 것을 감안해 구위가 아직 정상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에서 직구보다는 변화구 위주로 타이밍을 뺏고자 리드를 한 반면 박찬호는 버크만이 떨어지는 공에 잘 속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빠른 공으로 잡으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였다. 결국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1볼에서 박찬호가 브레이킹 볼을 던졌지만 버크만이 골라냈고, 다음 공에 직구를 던지면서 중견수 플라이로 이닝을 마감하는 모습이었다. 박찬호가 커리어 대부분을 선발투수로 보냈고, 하지만 지난 WBC에서 마무리 투수로도 좋은 활약을 보여 불펜이나 클로저로의 가능성도 열게 됐다는 점은 이미 다 아는 얘기다. 선발투수 시절에도 1회를 넘기기가 가장 어려웠던 그의 성향 때문에 빨리 100%의 컨디션을 가져가야 하는 불펜 투수로는 어렵다는 얘기도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올 시즌 선발과 불펜 양쪽에서 만족스러운 피칭을 선보이면서 이제는 그런 걱정도 사라지게 됐다. 그가 선발을 계속 고집해야 하느냐 지금에 만족해야 하느냐, 토레 감독은 왜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느냐는 식의 문제제기는 별 의미가 없다. 최근 들어 중간계투, 2번의 선발등판, 중간계투, 그리고 다시 선발로 내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오락가락한 일정이지만 그게 스윙맨의 운명이고, 또 토레 역시 자기 말을 번복해야 할 만큼 27년이나 감독을 해먹었음에도 당장의 앞날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게 다저스의 현 시점이다. 선발 투수들은 부상과 부진에 허덕이고 팀 성적은 5할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지구 선두에 고작 한 경기 반이 뒤져있어 시즌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다저스는 스무살의 커쇼를 마이너로 내렸다. 8번의 선발 등판에서 4.42로 그리 나쁘지도 않았지만 다저스에게는 한가하게 영건이나 키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데뷔 경기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6이닝을 던지지 못하고 제구력 난조로 무너진 게 컸다. 이제 박찬호에게 선발 고정 가능성이 높아진 걸까? 글쎄, 그저 후보 하나가 줄었을 뿐? 여전히 토레의 로테이션에 그의 이름은 빠져 있으며, 지난해 3년 4,700만 달러의 계약을 하고 딸랑 6경기만을 던져주고 있는 제이슨 슈미트가 재활에서 기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냥 박찬호의 몫이 스윙맨에서 더 가치를 발하고 있는 중이라며 좋게 생각하고 지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mlbpark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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