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체코 쿠바 대표팀 감독 보며 선수로 같이뛰던 시절 회상“프로동기 동희·호성 떠났지만 그라운드 지킨 내가 행복한 놈”
“긴가민가했는데 맞더라고. 세월 많이 흐르긴 흘렀네.”
우리 김동수(40)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가 세월을 들춘 건 2008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는 쿠바 대표팀의 안토니오 파체코(44) 때문이다.
김동수는 “쿠바 감독 이름을 듣고 귀에 익어 내가 아는 사람인가 했는데 신문에서 얼굴을 보니 맞더라”면서 “한때는 같이 선수로 맞붙기도 했는데”라며 웃었다.
김동수는 리틀야구 대표, 청소년 대표를 지내며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 그리고 한양대 2학년 때인 87년 성인대표팀에 뽑히면서 국제무대에서 쿠바와 상대했고, 파체코의 이름을 알기 시작했다. 김동수는 “당시 파체코는 뛰어난 타자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외야수와 지명타자로 뛰었다. 이후에도 쿠바의 전설적인 선수로 활약했다는 소식도 접했다. 당시 쿠바는 정말 무시무시했던 팀이었다”고 소개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대학생 위주였고, 실업 선수가 일부 포함됐다. 프로선수는 태극마크를 달 수 없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쿠바 선수들이 미국 등으로 망명을 시도하기 전이어서 그야말로 최강전력.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벅찬 상대였다.
실제로 한국은 1978년 8월 제10회 네덜란드 할렘국제대회에서 더블리그로 펼쳐진 1차전에서 김시진-최동원의 계투로 6-3, 2차전에서 박철순의 역투 속에 4-2로 승리했지만 1997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올림픽 기념 4개국 친선대회 1차리그에서 6-5로 승리할 때까지 국제무대에서 20연패를 당했다.
김동수는 그러면서 알 듯 모를 듯한 긴 숨을 토해냈다. “파체코는 감독을 하고 있고, 노모(히데오)는 은퇴하고, (박)동희하고 (이)호성이는 죽고…”라면서.
김동수, 박동희, 이호성, 노모는 90년 프로에 데뷔한 동기생이다. 그해 김동수는 박동희와 이호성을 누르고 한국에서 신인왕을 따냈고, 노모는 일본 퍼시픽리그에서 신인왕에 올랐다.
그런데 88서울올림픽 때 맞붙기도 했던 노모는 일본과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뛰다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박동희는 교통사고로, 이호성은 자살로 유명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동수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하나 둘 떠나고 이제 그만 홀로 현역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세월이 무상한 건지, 초등학교 때부터 30여 년간 포수로 뛰는 그가 대단한 건지…. 불혹의 백전노장은 “내가 가장 행복한 놈인가?”라며 슬며시 웃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