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소녀검객“날이길자는없다”

입력 2008-08-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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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사브르랭킹정상워드…올국제대회5개석권
2007년 독일에서 열린 한 펜싱대회. 미국 여자대표팀의 에드 코판티 코치는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우크라이나 남자팀 코치가 ‘남자 펜싱에 비해 여자쪽이 여러 면에서 뒤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웃어넘기던 코판티 코치도 야유와 비하가 갈수록 심해지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판티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그 팀에서 가장 믿을만한 선수를 데려오라. 아마 우리 팀 선수 한 명이 충분히 꺾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코치는 코웃음을 치더니 185cm의 장신에 떡 벌어진 체격을 갖춘 선수 한 명을 불렀다. 반면 코판티 코치가 내세운 선수는 아직 앳된 얼굴의 만 17세 소녀. 상대의 얼굴에 가소롭다는 듯한 미소가 퍼졌다. 대결이 시작됐다. 코판티 코치는 경기 도중 우크라이나 코치가 자기 선수에게 안타깝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왜 공격을 하지 못하는 거냐!” 대결이 끝났다. 스코어는 15-11. 하지만 승자는 남자쪽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벗은 소녀 선수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번졌다. 1년 후. 그 소녀는 세계 정상의 선수가 돼 세계 최고의 무대를 밟는다. 베이징올림픽 펜싱 사브르 금메달 후보인 베카 워드(18) 얘기다. 워드는 올 시즌 시니어 6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5개는 전 세계 선수들을 상대로 한 국제대회였고, 나머지 한 개는 미국대표선발전이었다. 더 이상 ‘앙팡 테리블’이라는 수식어는 필요 없다. 미국은 워드에게 베이징에서 첫 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워드의 가장 큰 강점은 정신력. 스스로도 “나는 경기에서 질 수가 없다. 뚝심이 세고 경쟁심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한 기자가 징크스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어느 쪽 양말을 먼저 신느냐 따위에 내 성공을 맡기고 싶지 않다”고 일축했을 정도. 펜싱은 대표적인 ‘마인드 게임’ 중 하나다. 첫 번째 시니어 월드 타이틀을 차지했던 2006년, 워드는 결승전에서 10-14까지 뒤지고도 마지막 5점을 연달아 따내며 15-14로 역전승했다. 워드 덕분에 명장 반열에 오른 코판티 코치는 “유니폼을 입은 사색가”라고 표현했다. 펜싱을 벗어난 삶도 치열하다. 워드는 15일 경기를 마친 뒤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한다. 3일 후 듀크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기 때문이다. 워드는 듀크대에서 펜싱으로 학위를 받는 첫 번째 학생이 된다. 수많은 대학 사이에서 고민하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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