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본지해설위원말말말]“독도를넘겼다,아니대마도도넘겼다”

입력 2008-08-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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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일본에‘일침’즉흥적으로떠올라…결승전9회말서긴장“더블플레이”못외쳐
미국에 피터 개몬스가 있다면 한국에 허구연이 있다. 해설인생 30년에 걸쳐 한국야구와 영욕을 함께 했던 그에게도 베이징올림픽은 ‘생애 최고의 특별한 순간’이었다. 25일 본사를 찾은 허구연 본지 칼럼니스트는 목이 잠겨 있었지만 여독을 풀 겨를도 없어보였다. 25일 밤 자비를 털어 후원하는 캄보디아 대학 야구선수들을 만나고, 26일 한화-롯데전 중계차 대전에 내려간다. 모레엔 미국 출장이다. 그럼에도 야구 이야기가 시작되자 ‘네버엔딩 스토리’가 줄줄 흘러나왔다. 천상 해설가다웠다. ○‘허구연 어록’ 이렇게 탄생됐다 “독도를 넘겼다”= 이승엽이 워낙 못 쳐서 홈런 치리라 1%도 생각 못했다. 타구가 붕 떴는데 그냥 크다고만 생각했지 펜스 앞에서 잡힐 줄 알았다. 그런데 타구가 계속 날아가니 “커요” 목소리도 따라서 더 커졌다. “독도를 넘겼다”는 일본의 워낙 거들먹거리는 발언이 떠올라 나왔다. 일부러 “대마도도 넘겼다”까지 했다. 미리 준비한 코멘트는 아니었다. “사토, 고마워요”는 ‘아리가토’라 할까 했는데 일본말을 쓸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 “아! 아악∼”= 쿠바와 결승전에서 9회말 1사 만루로 몰리자 ‘우린 금메달 운이 없나’란 생각만 났다. 중계를 그리 오래했는데 쓰러지는 줄 알아 호흡이 잘 안되더라. 병살아웃의 순간 소리만 지른 건 ‘더블플레이’라고 해야 되는데 목이 잠겨 안 나왔다. 이런 중계는 다시 할 게 아니더라. 이용규 2루타 때 나온 “들어가!”는 부디 파울이 되지 말라는 뜻이었다. ○지장 덕장 맹장 다 필요 없다. 복장이 최고! “김경문 감독, 천운이 따라”= 첫 경기 미국전 다 진 것 이기고 김 감독에게 “잘 하면 금메달 따겠다”고 하니까 “선배님, 기막힌 꿈을 꿨다”며 웃더라. 나중에 보니 벌거벗고 인터뷰하는 꿈이었다. 매 경기 다 졌다 이기는 드라마였다. 심판들이 7회까진 잘 보다 8,9회 가면 달라졌는데도 이겼으니 진짜 운이 따랐다. “한기주 등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대현 오승환 김동주 박진만 진갑용의 몸이 굉장히 어려웠다. 불펜 캐처가 없었으니 구원투수 몸 푸는 것도 늦었다. 미국전에 실패한 한기주를 일본전에 또 올린 건 만회해서 다시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밖의 기용은 상당히 잘 한 것 같다. 제일 기분 좋은 점은 치사한 야구를 안 했다는 것이다. ‘동양야구=번트’란 선입견을 깨 통쾌하다. 국제대회에서도 자기 스타일대로 갔다. 미국이 봐도 인상 깊었을 것이다. 대타 기용도 딱딱 맞았고. 김광현-류현진 원투펀치는 8개국 최강이었기에 준결승만 통과하면 우승이라고 봤는데 김 감독의 기획력이 돋보였다. ○이승엽은 최고선수 이전에 참 좋은 친구 “WBC는 박찬호, 올림픽은 이승엽이 주도했다”= 일본이 이승엽을 얼마나 눈엣 가시로 여기겠나. 소속팀 요미우리도 욕 얻어먹을 수 있고. 좋은 후배를 많이 봐왔지만 슈퍼스타 이승엽보다 인간 이승엽을 더 좋아하게 됐다. 이승엽보다 더 잘하는 선수야 나오겠지만 인간성까지 겸비한 선수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일본전에 홈런 나오기까지 하도 안 맞아서 그런지 “눈 감고 친 홈런. 몸쪽으로 와서 투심 아니면 커터라 여기고 휘둘렀는데 처음엔 먹힌 줄 알았다”고 하더라. 하도 안 맞아서 김현수에게 “어떻게 하면 잘 칠 수 있냐”라고 묻기까지 했단다. 대회전까지 데이비 존슨 미국 감독부터 전부 이승엽 밖에 모르더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전부 이대호에 대해 물어왔다. 4강에서 일본을 이긴 데엔 이대호의 공이 크다. 후지카와의 높은 쪽 유인구를 골라낸 게 굉장히 컸다. 불펜에서 이것저것 다한 윤석민도 결정적이었다. 일본전을 이기고 뒤에서 대성통곡을 하더라. ○허구연은 한국의 숨은 첩보원 “스트라스버그가 선발 알려줘”= 사실 동메달이 우리 원래 목표였다. 첫 경기 미국전은 무조건 이겨야 됐다. 12일 미중 연습경기가 있었는데 부시 미국 대통령이 시구하고, 1시간 동안 보고 갔다. 그 경기에서 좌완 브래드 앤더슨이 4회 던져서 ‘얘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존슨 감독은 오른손이라고만 하고. 그래서 순진한 대학생인 스트라스버그에게 물어봤는데 “아마 브랜던 나이트일 것”이라고 알려줬다. “류현진은 직구만 던진다?”= 쿠바 파체코 감독에겐 한국 평가전부터 선물을 줬는데 베이징공항에서도 자수정 목걸이를 구입해 “부인 주라”고 전했다. 기분 좋아서 결승 한국전 선발은 왼손이라고 알려주더라. 그러면서 한국 선발을 묻기에 “왼손인데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린다고만 했고, 서클체인지업 얘기는 안했다. 운 좋게도 구심이 바깥쪽을 넓게 잡아줘서 편하게 갔다.” ○금메달 계기로 야구가 더 잘 되려면 “야구인의 희생과 양보를”= 국민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고교야구팀이나 시설에서 과연 이것을 어떻게 이어갈지. 들뜬 기분은 며칠로 끝내자. 정부나 지자체가 생각을 전환해 새 구장을 짓고 3년 안에 2팀 가량 더 생겼으면 좋겠다. 일본이 다음 WBC부터 죽기 살기로 나올 것이다. 예전처럼 병역면제 위해 구단이나 특정인 입김에 의한 대표선발이 아닌 KBO 기술위원회가 틀을 잡고, 그 다음에 마지막 선택은 감독에게 전권을 주는 것이 옳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김도헌기자 dohoney@donga.com 정리|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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