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 KIA김상현“고향땅밟으니,방망이가신났다”

입력 2009-05-0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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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은경 기자 parkek4114@donga.co

7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한 뒤 12게임에서 타율 0.333에 2홈런, 15타점. 7연속경기 타점도 생산했고, 홈런 2방은 모두 그랜드슬램이었다. 주변에선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하고, 그가 5번으로 자리매김하면서 4번 최희섭도 탄력을 받았다며 ‘김상현 효과’라는 말도 나온다. 2000년 해태에 입단해 2002년 LG로 트레이드된 뒤 지난달 19일, 다시 호랑이 유니폼을 입고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KIA 김상현(29). 군산초-군산남중-군산상고를 졸업한 ‘군산 토박이’인 그를 지난 주말 한화와의 홈경기가 열렸던 고향 군산에서 만났다. ●‘악을 먹고’ 이제 꽃 피우기 시작한 만년 유망주 올해로 프로 10년째. 2005-2006년, 2년 상무 생활을 제외하고 8년 동안 규정타석을 채운 건 2007년이 유일했다. LG에서 매 시즌 ‘눈여겨 봐야할 선수’로 꼽혔지만 정작 꽃을 피우진 못했다. 해태서 LG로 이적한 후 이듬해였던 2003년 한창 잘 나가던 때, 7월 13일 전반기 마지막 게임에서 왼쪽 팔뚝뼈가 골절돼 그해 후반기를 전부 날려버리기도 했다. 상무에서 2군리그 홈런왕, 타점왕을 차지하고 다시 프로에 돌아온 뒤에도 그렇게 빼어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여기서 못 하면 끝이다’는 마음으로 악을 먹고 KIA로 돌아왔다”는 게 그의 말이다. ●왜 안 됐을까 KIA로 트레이드될 때. LG 김재박 감독은 “기회를 못 줘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사실, LG에서 기회를 얻을 만큼 얻었지만 살리지 못한 건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았던 기회, 왜 놓쳤을까. “운동을 게을리 한 적도 없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할 때는 했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가 작았던 것 같다.” 타석에 서면 위축되며 너무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마음 먹자, 난 할 수 있다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타석에만 서면 불안했고,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이제 그런 ‘약함’이 없어진 것 같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같이 운동할 운명이 아닌가 보다 해태 시절, 그를 LG로 ‘밀어낸’ 것은 3루수로 포지션이 겹쳤던 정성훈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LG에서 다시 KIA로 돌아오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정성훈 때문이다. 지난해 말 LG가 정성훈과 이진영 두 프리에이전트(FA)를 영입했고, 김상현은 다시 정성훈 덕분(?)에 친청팀에 올 수 있게 됐다. 김상현이 중학 시절, 또래보다 10㎝ 키가 작아 1년 유급을 했던 탓에 정성훈과 이진영은 김상현보다 ‘프로 1년 선배’지만, 셋은 모두 1980년생 동갑내기. 특히 이진영은 초중고를 함께 다니며 꿈을 나눈 사이다. KIA로 이적하면서 김상현은 두 친구 앞에 아쉬움을 담아 이런 말을 했다. “우린 같이 운동할 운명이 아닌가 보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부른다 친구들과는 헤어졌지만 그는 대신 LG에서 호흡을 맞췄던 황병일 타격코치와 다시 만났다. 한 때 그는 힘만 세고 기술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들었다. “손목을 쓸 줄 아는데 무작정 썼다”는 게 그의 고백. 그러나 KIA로 돌아온 뒤 타격 때 열리던 왼쪽 몸을 닫고, 몸의 중심이 투수쪽으로 쏠리던 단점을 바로잡으면서 그야말로 뒤늦은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다. 평소 다른 팀에 있을 때도 가끔씩 전화로 황 코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던 김상현은 황 코치의 조언에 따라 이제 무서운 호랑이로 거듭나고 있다. ●고향은 그래서 좋다 다시 못 돌아올 것 같았던 고향팀에 돌아오며 7년만에 호랑이 유니폼을 입었지만 마치 그동안 계속 이 팀에 있었다는 듯, 아무런 어색함이 없었다. “우리팀 컬러가 독특한데, 오자마자 금세 KIA 선수가 돼 있다”는 게 팀 선배 서재응의 말. 김상현은 “고향팀에 오니까 정말 좋다. 마음도 푸근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고향이 좋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를 지켜준 아내를 위해 올 초 LG에서 전지훈련을 할 때. 정성훈까지 가세, 자신의 위치에 불안감을 느낀 김상현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겨울을 났다. 그러나 땀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1차 전훈지였던 사이판에서 2차 훈련지인 오키나와로 옮겨갈 때,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만 했다. ‘명단에서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아내 유미현씨 얼굴이 떠올랐다. ‘올해는 뭔가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내 유씨는 해태시절 만나 LG로 이적하면서 본격적으로 사랑을 키워온 인생의 동반자. 게으름을 피울 때, 야구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밥 사주며 힘을 주던 ‘누나’에서 2007년 겨울, ‘아내’가 됐다. “나 때문에 많이 고생한 아내에게 이젠 내가 힘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간절한 바람이다. ●서른살 김상현의 꿈 “고등학교를 다닐 때, 새벽에 타이어를 때리다 사람들 잠을 깨워 혼나고, 숨어 있다 또 때리고 하던 기억이 난다. 야구가 그만큼 좋았고, 지금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한국나이로 올해 서른살, 야구를 시작한지 20년이 됐다. 잘 나가는 친구 이진영과 정성훈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모두 지난 일일 뿐. 그의 표현대로, ‘김상현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후회 없이, 고향팀에 뼈를 묻고 싶다. “이제 나이도 있고, 팀 내에서 내 위치도 있고 하니까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적지 않은 나이, 이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다져가고 있는 김상현. 그래서 그가 앞으로 열어갈 새로운 미래가 더 기대된다. 군산 |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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