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간다]제1회자전거축전도전

입력 2009-05-20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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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스타트는 만점. 전주-광주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기진맥진오르막댄스!…“날버리지마”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도로일주사이클대회)는 모든 사이클러의 꿈이다. 3주간 20여 구간, 총 4000여km를 달리는 투르 드 프랑스는 유럽에서 월드컵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한다.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통과하는 여정은 한 폭의 그림 속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 풍경을 바람처럼 가르는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38·미국)의 사진 한 장만으로도 마니아들의 가슴은 떨린다.

하지만 대다수 사이클러에게 투르 드 프랑스는 언감생심. 200여명의 세계 최고수들만이 지옥의 레이스에 초대받는다. 수 천 여명의 팬들은 사이클과 자동차로 전 구간을 뒤쫓을 뿐이다. 이것조차도 쉽사리 프랑스로 날아갈 수 없는 한국 팬들에게는 로망이다.

마침내 한국의 아마추어 사이클러들에게도 ‘천국의 풍경에서 펼쳐지는 지옥의 레이스’를 맛볼 기회가 생겼다. 4월25일부터 5월3일까지. 전국일원에서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제1회 대한민국자전거축전이 열렸다. 까다로운 선발기준을 뚫고 어렵사리 참가신청서를 냈다.

○“저는 왜 사이클 화 안주세요?”

이번 대회는 서울-인천-춘천-청주-대전-전주-광주-목포-진주-창원을 잇는 대장정이었다. 총연장거리만 849.3km. 도전 코스는 4월30일. 전주에서 광주까지 달리는 109.4km구간이었다.

오전10시. 집결지인 전북도청 앞으로 서서히 동호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번대회에서 개인종합2위를 차지한 김동환(DURACELL)씨가 선뜻 사이클을 내 주었다. 선수용 사이클의 가격은 1000만원이 넘는다. 여유가 있는 동호인들은 사이클 한 대를 위해 700-800만원을 투자한다. 김동환씨는 “이 사이클도 400-500만원 수준은 된다”고 했다.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대회 관계자의 엄포에 살짝 긴장 됐다. 사이클 복을 입고, 헬멧까지 쓰니 제법 그럴싸해 졌다. 헬멧은 머리를 보호함과 동시에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 한다. 동호인들은 사이클 화까지 착용한다. 사이클 화 바닥에는 스파이크 징과 같은 클릿(cleat)이 장착돼 있어, 신발과 페달을 고정시킬 수 있다. 페달에는 더 큰 힘이 전달된다.

“저는 왜 그 신발은 안주시나요?”, “뭘 다 따라 하려고 그래요?” 경륜선수인 김막동씨가 웃었다. 초보자들은 사이클이 넘어질 때, 페달에 고정된 발을 잘 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형사고를 막기 위해, 사이클 화는 다음 기회에.

“선수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길옆으로 붙어서 가라”는 심판위원장의 지시대로 ‘나 홀로 레이스’. 오르막이 나오자 다리는 천근만근, 페달 질은 슬로 모션이 돼 버렸다. 동호인들은 두 뺨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아주려는 듯, 바람이 되어 쌩쌩 지나쳐갔다. 전주-광주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두 발 자전거 탔는데.”

“사이클은 타 봤어?” 복장과 장비 검사. 류황선 심판위원장이 물었다. “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두 발 자전거 탔는데요.”

“한 번 타 보라”는 말에 페달을 밟았지만, 묘기 자전거처럼 삐뚤빼뚤. 심판위원장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출전불가를 통보했다. “위원장님, 저 꼭 타야 돼요.” 애걸복걸에 통사정.

동호인이라고 하지만 출전선수들의 수준은 준선수급이다. 전주에서 광주까지 예정 주파시간은 3시간. 평균 시속 40km가까운 속도다. 내리막길에서는 시속100km 가까운 속도까지 나온다.

무리를 지어 레이스를 펼치기 때문에, 단 한명의 실수는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십상. 바로 전날에도 한 선수가 큰 부상을 당해, 심판 진은 예민한 상태였다.

다른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무리한 레이스를 펼칠 수는 없었다. 단 한명의 낙오자 때문에 교통통제 시간을 연장시킬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그럼, 오픈(open) 전까지만 해.” 오픈은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레이스를 펼치는 시점을 말한다. 그 전까지는 전문선수들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며, 앞에서 레이스를 끌어준다.

이번 대회가 아마추어 선수들의 축제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집단레이스를 하며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이다. 이후 51.2km 지점에서 페이스메이커들이 빠지면서 본격적인 순위경쟁이 시작된다. 겨우 출발선 앞에 섰다.

철쭉·유채… 여기는 비단길! 전주-광주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풍경의 파노라마적 지각’

오전 11시. 총성과 함께 출발. 전주시내를 벗어나니 비단길이 열렸다. 때는 4월과 5월이 마주치는 길목. 철쭉과 유채가 사이클러들을 맞았다. 사람의 시야는 140도. 앞만 보는데도 주변 풍경이 들어온다.

오르막. 기어를 5-6단으로 내려 체인을 느슨하게 만든다. 왜 오토매틱 사이클은 없는지. 기어변속이 익숙지 않아 뒤뚱뒤뚱 이다. 오르막 시, 안장에서 일어나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고 선수들은 “댄스 춘다”고 말한다. 실컷 춤을 췄다.

내리막. 기어(총20단)를 18-19단 까지 올려 체인을 팽팽하게 만든다. 선수들은 내리막에서 승부를 건다. 브레이크를 잡지 않는 것이 관건. 브레이크 잡는 법을 잊어보려 했지만, 속도감이 두려움으로 전이되자 손은 본능적으로 오므라들었다.

시각.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리막에서 페달을 더 세게 밟는다면, 풍경을 느낄 겨를은 더 없어진다. 볼프강 쉬벨부쉬가 <철도여행의 역사>에서 얘기한 ‘풍경의 파노라마적 지각.’ 초기 열차의 속도가 시속40km 정도에 불과했으니 딱 사이클 속도와 비슷하다.

촉각. 페달의 숨이 가빠올수록 대기가 얼굴을 때리는 강도도 높아진다.

청각. 사이클이 빠르면 빠를수록 “쉬이”하며 귓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바람 소리 역시 커진다.

때마침 옆에서는 잠시 사이클을 세우고, ‘쉬이’를 하는 동호인들이 있었다. 출발 전에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했음에도 몇 시간 씩 레이스를 하다보면, 또 신호가 온다. 레이스 도중 잦은 수분섭취도 원인. 전문선수들은 사이클을 타면서도 소변을 볼 수 있다.

모두다 추월… 아! 외로운 질주. 전주-광주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사이클, 연극보다 더 극적인

선수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길가로 빠져 달리던 신세도 이제 막바지. 내장산 입구가 다가왔다. 오픈직전.

뒤로 처지는 동료에게 다가서는 선수가 보였다. 그는 한 손을 내밀어 동료의 등에 갖다댔다. 끝까지 함께 가자는 묵언의 격려. 1-2분가량 뒤를 받쳐주자 떨어졌던 동료도 힘을 냈다.

이내 오픈이 되고, 절반의 레이스가 끝났다. 이후 차량으로 광주까지 이동.

결승선에 먼저 도착한 지, 30분 만에 선두그룹이 쏟아져 들어왔다. 중년의 아저씨도 있었고, 3급 지체장애를 이겨낸 진용식(31·의정부MCS)씨의 모습도 보였다. 잠시 뒤, 뒤처진 동료를 받쳐주던 선수도 3시간이 넘는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랜스 암스트롱은 “사이클은 연극이 아닌 스포츠지만, 레이스는 언제나 연극 이상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고환암을 이겨내고 투르 드 프랑스 7회 연속우승의 금자탑을 쌓은 암스트롱이 그랬고, 2000시드니장애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진용식씨가 그랬다. 자신의 기록을 희생하면서도 동료를 배려한 한 동호인 역시, 연극보다 극적인 장면의 주인공이었다.

전주·광주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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