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프리토킹]인구7만명번리,기적을쏘다

입력 2009-05-28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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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만의EPL승격‘감동스토리’
열정 하나로 일군 짜릿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막차 승선기였다. 2008-200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3연패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면, 리버풀 서포터들과 함께 극성맞기로 쌍벽을 이루며 EPL 창설 이후 16년 동안 터줏대감을 자처하던 뉴캐슬의 강등은 시즌 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충격 그 자체였다. 뉴캐슬의 수비수 스티븐 테일러는 뉴캐슬 치욕의 원인을 동료들의 열정 부족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이제 뉴캐슬은 그 열정 부족의 대가로 선수 연봉을 600억원 이상 삭감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내몰렸다”고 허탈해했다.

이와는 반대로 넘치는 열정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팀이 있다. 바로 33년 만에 잉글랜드 최고 리그로 복귀하는 번리다.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서 5위로 턱걸이한 후 레딩과 셰필드를 차례로 꺾고 플레이오프에서 마지막 프리미어리거가 된 번리는 지금 도시 전체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이다. 시청에서의 환영행사에 이어 시내에서 벌어진 카페레이드에는 열광한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선수들을 환영했다. 이번에 같이 EPL에 승격한 울버햄튼과 버밍햄보다 번리의 기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시즌 전 승격후보는 고사하고 5위권 진입도 힘들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번리가 브리스톨을 꺾고 챔피언십 5위를 확정한 것 만해도 번리 33년 만의 최고 성적이었다.

○인구 7만 도시 번리, 33년만에 EPL 복귀

번리는 축구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잉글랜드 북서쪽 지역의 한 소규모 도시에 불과하다. 이곳에는 맨유와 리버풀을 위시해 애버턴, 맨체스터 시티, 볼턴, 블랙번, 위건 등 번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빅 클럽들이 즐비하다. 번리의 매니저 오웬 코일은 “우리는 EPL에 진입한 역사상 가장 작은 도시”라며 팬들에게 자부심을 가지라고 선언했다. 코일은 “우리가 맨유 원정을 가게 되면 우리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우리 도시 전인구보다 많은 맨유 서포터들을 대하게 된다. 우리는 가서 즐길 것”이라고 흥분을 나타냈다. 그의 말대로 7만6212석을 자랑하는 올드 트래포드는 7만 명에 불과한 번리 전체를 수용하고도 남는 규모다. 그러나 비록 번리의 인구는 적을지 몰라도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먼저 번리 시즌 티켓 소지자가 인구 10%%에 해당하는 7000명이나 된다. 번리 구단 회장인 배리 킬비는 번리가 EPL에 승격한다면 이 시즌 티켓 소지자 7000명 전원에게 시즌 티켓 비용을 전액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기 위해 드는 40억 원이 번리 구단입장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번리의 승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번리는 EPL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1200억 원의 돈방석에 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당 평균 입장객 수가 1만 3000명으로 번리 시민 5명 중 한 명이 터프 무어(번리 홈구장)를 찾고 있다. 플레이오프가 열린 8만석 규모의 웸블리를 가득 메운 번리 팬들로 경기 당일 번리는 도시 전체가 텅텅 빌 정도였다. 한마디로 번리 도시 전체가 서포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절대적인 지지 속에 번리는 이번 시즌 칼링컵에서 풀럼, 첼시, 아스널을 꺾고 빅 클럽 킬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박지성 연봉도 안되는 돈으로 스쿼드 구성

1888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리그인 풋볼 리그(The Football League)의 창단 멤버였던 번리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참고로 풋볼 리그는 현 EPL이 창설되기 전까지는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였고 지금은 EPL과 챔피언십, 리그 1, 리그 2를 아우르는 풋볼 리그로 양분되어 있다) 1921년, 1960년 두 번에 걸쳐 풋볼 리그 챔피언이 된 것이 거의 전부이던 번리에 새 바람이 분 것은 현 코일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부터이다. 번리의 사령탑이 된 지 18개월 동안 코일은 EPL 선수 한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55억원의 돈으로 현재의 번리 스쿼드를 완성했다. 그래서 번리에는 22명의 스쿼드 중 16명이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킬비 회장으로부터 젊지만 대단한 야심가라는 평을 받는 코일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이번 시즌에만 EPL 5클럽을 이기는 저력을 보여주며 주목을 받았다. 결국 번리의 EPL승격까지 이루자 공석이 된 셀틱의 새 감독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일절 술을 마시지 않기로도 유명한 코일은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자신은 현재의 일에 집중하고 싶다며 완곡히 번리에 남을 것임을 시사했다. 킬비 회장도 코일은 EPL에서도 번리를 이끌 번리의 매니저라고 선을 그었다. 승격이 확정되고서도 샴페인 대신 청량음료를 들고 주황색(번리의 애칭) 팬들 앞에 선 코일은 모든 것을 선수와 팬들의 공으로 돌렸다. 이미 EPL클럽들에 이겨본 바 있는 번리가 그 색깔만큼이나 선명한 팬들의 열정을 업고 펼칠 EPL 반란에 벌써부터 다음 시즌이 기다려 진다는 번리 서포터들을 보며 그들의 선전을 기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크(영국) | 전홍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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