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인사이드볼파크]강봉규,프로10년만에장밋빛안타행진

입력 2009-06-17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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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봉규. 스포츠동아DB

“하루 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100안타를 쳐보는 게 첫 번째 꿈입니다.” 프로입단 10년만에 최고의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는 삼성 강봉규(사진)의 꿈은 소박하다.

지난해까지 강봉규가 한 시즌 가장 많이 때린 안타수는 2002년과 2007년 두차례 기록한 40개. 강봉규는 “홈런을 한해에 40개씩 치는 선수도 있는데 고작 안타 40개 치려고 프로에 왔나 생각하니 많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올해 강봉규는 연일 안타를 뿜어내고 있다.

15일 현재 0.332로 당당히 타격 9위. 벌써 62안타를 쳤다. 경남고와 고려대에서 대형 3루수로 활약한 강봉규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초대 드림팀 멤버다.

프로에 와서 당한 두차례의 커다란 부상만 없었으면 훨씬 빠르게 타격능력을 뽐냈을 선수다. 첫번째 부상은 손목골절. 2003년 4월 청주 한화전에서 타격을 하다 왼 손목을 크게 다쳤다. 수술후 재활에 전념했지만 손목부상은 오랫 동안 강봉규를 괴롭혔다.

달갑지 않은 두번째 부상은 이듬해 또 찾아왔다. 6월 광주 KIA전에서 마해영의 파울타구를 잡다 오른쪽 어깨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고 두번째 수술을 받았다.

2년연속 수술을 받은 후유증은 체력저하로 나타났다. 완벽하게 몸을 만들지 않고 서둘러 경기장에 나선 게 잘못이었다. 어깨와 손목통증이 계속 이어졌고 아무리 훈련을 해도 몸에 힘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구를 그만둘까도 심각하게 생각했다.

2006년 김창희와 함께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지 않았으면 은퇴를 했을지도 몰랐다는 게 강봉규의 솔직한 이야기다. 2007년까지 강봉규는 진통제를 먹고 경기에 나갔다. 수술한 어깨가 아파 진통제를 먹지 않고는 치는 것도 공을 던지는 것도 힘들었다.

강봉규는 지난해 마무리 캠프부터 나가시마 타격코치와 함께 야구인생을 걸고 훈련에 집중했다. 언제까지 백업으로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공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도록 타격자세를 고치고 2루수 방향을 노리는 간결한 스윙으로 바꾸었다. 하루 1000개 스윙을 해가며 전지훈련 때는 점심시간에도 특타를 했다.

선동열 감독은 “마무리캠프부터 봉규가 정말 열심히 했다. 기대가 컸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다”며 흡족해 했다.

강봉규는 틈날 때마다 절친한 친구인 두산 포수 최승환에게 전화를 건다.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으로 학교는 다르지만 나란히 2000년 프로에 뛰어 든 입단동기다.

둘은 지난 5월 17일 잠실경기때 홈에서 충돌했고 최승환이 이때 무릎에 큰 부상을 입었다. “저나 승환이나 10년만에 처음 주전 자리를 잡았는데 승환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제가 친구 몫까지 해야죠.” 강봉규는 친구의 빠른 복귀를 기원한다.

강봉규는 근력과 순발력이 90%% 정도 회복돼 어떤 공도 칠 것 같은 자신감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10년만에 잡은 주전자리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도 숨기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에게는 꿈이 없었다. 이제 새로운 꿈이 생겼고 더 나은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강봉규. 그의 새로운 야구인생이 오랫 동안 밝게 빛나기를….

야구해설가
꿈이 있는 사람은 걱정이 없다. 실패와 낙심으로 힘들어도 꿈이 있어 이겨낼 수 있다. 선수들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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