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두산임재철,죽기살기로흘린땀3할의꿈이보인다!

입력 2009-08-20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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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임재철. 일러스트|박은경 기자 parkek4114@donga.com

세번의트레이드시련딛고우뚝선두산임재철의야구스토리
“두산 임재철 안타∼두산 임재철 안타∼날려버려∼날려버려 안타∼♬”

4살배기 딸 지유가 아빠를 위해 만든,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응원가.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으고 온전치 않는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두산 임재철(33)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미소가 번져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칠 때마다 버팀목이 돼주는 가족. 두산 외야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수달(수비의 달인)’이자 ‘타신(타격의 신)’ 임재철은 부끄럽지 않은 남편, 그리고 아빠가 되기 위해 한 타석, 한 타석 신중히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응원송 만들어준 네살 우리딸 지유는 천사”

“천재예요. 천재.”

임재철은 딸이 찬송가를 개사해 응원송을 만든 것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예비아빠’ 최승환은 “분명 형수님이 시킨 것”이라며 질투했지만 영상 속 지유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사랑스러웠다. “지유 대학 보낼 때까지 야구하고 싶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아빠’ 임재철의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아이가 커가는 걸 보면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죠. 야구를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러려면 꾸준히 잘해야 되는데….”

○팀을 위해 언제나 희생… 김경문도 인정한 성실함

임재철은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는 이미 두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한 축이다. 외야를 단단하게 지켜 내거나 필요할 때마다 적시타를 터트려주는 건 다음 얘기다. 주자가 나가면 시키지 않아도 번트를 대고, 출루하기 위해 몸쪽 공도 피하지 않는다. 그런 임재철의 모습에 후배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김경문 감독도 성실함을 임재철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는 “밉지 않은 선수”라며 흐뭇하게 웃었다.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구단을 자주 옮겼지만 그때마다 감독님들이 다 절 예뻐해 주셨어요. ‘무섭다’는 선배들도 이상하게 저에게는 잘 해주셨고요. 후배들이요? (김)현수도 그렇고 요즘 잘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오히려 제가 배우고 있는 걸요.”

○무서운 자기관리 “흘린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룸메이트 민병헌의 증언에 따르면 임재철은 후배들이 가장 닮고 싶은 선배다. “선배님은 자기관리가 정말 철저해요. 밤 12시가 지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요. 방에 들어와서도 야구 얘기만 한다니까요.(민병헌)” 김민호 수비코치도 “(임)재철이는 몸을 만들기 위해 헬스장을 두 곳이나 다닌다”며 그의 부지런함을 칭찬했다. 임재철이 이토록 열심인 것은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어서다. 실제 임재철은 7월 31일 잠실 SK전이 끝난 후 김현수와 함께 불펜에서 배팅연습을 했고 다음날 결승 3점포를 쏘아 올렸다.

“아니에요. 그때 홈런을 친 게 저에게는 마이너스예요. 장타에 욕심을 내게 됐거든요. 타격할 때 저도 모르게 다리를 들게 되고. 제가 쳐야할 건 홈런이 아닌데 말이죠.”

○1998년 한국시리즈 부상투혼…핵폭풍 신인 등장

임재철은 늘 이런 식이다. 칭찬하면 바로 반기(?)를 든다. “강한 어깨를 이용한 송구 능력은 8개 구단 통틀어 최고”라고 말하면 “수비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자는 방망이가 좋아야한다”는 식이다. 올 시즌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30경기나 남았다”고 손을 저었다. 그가 이토록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롯데에서 삼성으로, 삼성에서 한화로, 그리고 두산으로 트레이드되는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경성대를 졸업하고 1998년 롯데 2차 17번으로 지명된 임재철은 입단하자마자 집중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이듬해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부상당한 허리에 테이핑을 하고 대타로 나서 1-2로 뒤지던 6회말 2사 만루, 한화 송진우를 상대로 풀카운트 접전 끝에 2타점 역전타를 만들어냈다. 경기는 재역전되며 롯데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당시 임재철의 부상투혼은 야구팬들의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아팠는데 왠지 그 타이밍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방망이를 들고 감독님 앞에서 무작정 휘둘렀죠. 결과가 좋게 나와서 다행이지 타석에서 얼마나 후회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야구를 가장 잘 했던 것 같은데요. 하하.”

○만년 기대주, 삼성·한화·두산으로 트레이드 인생

임재철은 그 경기를 계기로 팀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인기구단에 몸담고 있다보니 성적이 저조해도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됐다. 2002년 임재철은 결국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못 해서 방출’이라기보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은 기대주로서였다. 게다가 그가 옮긴 첫 해 삼성이 우승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룡 현 삼성 사장은 임재철을 누구보다 아꼈다. 그러나 김 사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비해 그의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음 해 또 다시 트레이드 소문이 나돌았고 이번에도 임재철이었다. 한화에 둥지를 튼 그는 잦은 이동 탓인지 타율은 1할대로 뚝 떨어졌고 결국 2군에 머물렀다. 2004년에 다시 두산 차명주와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한화에서 트레이드 얘기가 나올 때 ‘내가 가겠구나’ 감이 딱 오더라고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오히려 담담했던 것 같아요. 두산에서 죽기 살기로 해보자는 생각만 들었죠.”

○병역의 또다른 시련…“감독님 믿음에 보답하자”

임재철은 마음을 다잡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트레이드된 해 병역비리가 터졌다. 롯데 시절 받은 무릎수술이 군 면제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믿은 게 화근이었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임재철은 재검을 받았고 2007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2년간의 공백. 2005년 두산에서 3할대 타율을 기록한 터라 아쉬움은 컸다.

“사실 그때보다는 올해 스프링캠프가 더 힘들었어요. (민)병헌이 있죠. (정)수빈이 있죠. 지금은 없지만 왓슨 있었죠. 사실 이번 캠프 때 제가 잘 못 했거든요. 그럼에도 감독님이 절 믿어주셨고 개막전부터 내보내주셔서 감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3할타율 제2의 전성기…한국시리즈 우승도 반드시!

임재철의 현재(18일) 타율은 0.303이다. 한 시즌에 10명도 채 안 나온다는 3할 타율을 유지하는 게 그의 첫 번째 목표, 물론 진짜 목표는 팀의 우승이다.

“제 동기들이 KIA 최희섭, 롯데 홍성흔, 김병현이에요. 다 A급 선수인 거죠. 학창시절부터 그 친구들을 따라잡겠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해왔어요. 아직 멀었지만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것 같아 뿌듯하네요. 그리고 올해는 반드시 헹가래 한 번 하려고요. 저 준우승(롯데1번·두산2번)만 3번이에요. 삼성에서는 백업일 때 우승했으니까 주전일 때 해야겠죠?”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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