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시즌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는 삼성 김재걸은 누구보다 성실한 플레이로 묵묵히 제몫을 해왔다. 스포츠동아DB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삼성 김재걸(37·사진)의 목소리는 예상 외로 담담했다. 올 시즌 초 선동열 감독으로부터 “앞으로 너를 코치로 쓰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마지막이 될 선수생활을 남몰래 정리하고 있었던 김재걸. 그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닥치니 아쉬운 생각밖에 안 든다”고 섭섭함을 드러냈지만 “마지막인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1995년 프로구단에 발을 들여놓은 김재걸은 무려 15년 동안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다. 팀 내 가장 고참인 양준혁(40)도 1999년 해태, 2000-2001년 LG로 외도를 했지만 김재걸만은 외길을 걸어온, 진정한 ‘삼성맨’이다. 선수단과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일궈냈고,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감격의 순간에도 늘 그가 있었다. 2006년에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발탁돼 4강 신화를 일궈내기도 했다. 7일까지 개인통산 1120경기에 출장해 타율 0.230.
그랬던 그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의 종지부를 찍는다.
김재걸은 “선수로 계속 뛰려면 타 팀으로 이적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지금까지 날 키워준 팀과 감독님을 배신할 수 없어서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재걸은 선수로서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곧 “아직 경기가 남아있으니 벌써부터 은퇴시키지는 말아 달라”며 웃었다. “비록 백업선수이지만 열심히 뛰는 후배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어려운 순간에 대타든, 대수비든 나가서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 그럴 수 있어서 김재걸은 “행복하다”고 했다.
“2005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결승 2루타를 쳤잖아요. 제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덕분에 얻은 ‘신데렐라’ ‘미스터 옥토버’라는 별명도 마음에 들고요. 또 팀이 우승할 때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게 선수로서 자부심이 큽니다. 전 행복한 선수였습니다.”
김재걸은 다시 한 번 호탕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인생에 대한 설렘을 가득 담아.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