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가 간다] 재활훈련? 지옥훈련?…뻗어버린 저질체력

입력 2009-10-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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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희(아래) 기자가 재활훈련 체험도중 지쳐 쓰러져 만세를 부르자 이용대가 옆으로 다가와 위로하다가 카메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이고 있다. 스포츠에서 재활은 ‘사람을 키운다’라고 말할 정도로 부상을 입은 뒤 복귀를 준비하는 선수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며 그만큼 힘들다. 용인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팔 다친 이용대의 막바지 재활훈련 치료중 일그러진 표정서 고통 실감
22일, 대전 도솔체육관에서 열린 제90회 전국체전 배드민턴 일반부 남자복식 결승. 조건우(21)와 호흡을 맞춰 전남대표로 출전한 이용대(21·이상 삼성전기)는 김대성-신희광(경기)조를 2-0으로 꺾고, 시상대 맨 위에 섰다. 2008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에서도 이효정(28·삼성전기)과 짝을 이뤄 금메달을 목에 건 이용대 이지만, 전국체전 1위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오른쪽 팔꿈치 부상 이후, 한 달 반의 재활훈련 끝에 이룬 성과이기 때문. 이용대는 결승전 내내 오른쪽 팔에 테이핑을 하고 있었다. 체육인들은 흔히 “일상적 훈련은 기량을 키우지만, 재활훈련은 사람을 키운다”고들 한다. 전국체전 출전 약 2주전인 9일. 이용대가 재활훈련 중이던 경기도 용인 삼성 트레이닝센터를 찾았다. 일일재활훈련체험. 이제 소년의 티를 벗은 청년의 마음은 재활을 통해 얼마나 더 여물었을까.


○윙크왕자, 불의의 부상에 일격

8월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2009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 남자복식결승. 이용대-정재성(27·상무)조는 푸하이펑-하이윈(중국)조와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한 스매싱. 순간, 이용대의 오른쪽 팔꿈치가 아려왔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통증. 하지만 2007말레이시아세계선수권에서도 은메달을 딴 이용대로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세트스코어 1-2 패배. 이용대는 “아파서 그랬던 것이라고 핑계대고 싶지는 않다”고 했지만, 그의 얼굴 한 구석에는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열흘 뒤, 2009대만오픈에서는 기권. 통증은 더 심해졌다. 이용대는 “2007년 1월 말레이시아 오픈에서도 발목을 접질리는 부상을 당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라켓을 휘두르지 못할 정도로 아팠던 것은 처음”이라고 털어놓았다. 귀국 이후 정밀진단 결과 내측상과염. 팔꿈치 안쪽에 툭 튀어나온 뼈에 염증이 생긴 것으로, 흔히 ‘골프 엘보’라고 불리는 부상이었다. 9월, 태릉선수촌을 나와 삼성트레이닝센터(STC)에 들어 온 이용대는 안병철(52·삼성전자상무) 센터장의 재활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전국체전이 코앞. 재활은 이미 막바지였다.


○재활훈련 막바지, 가장 큰 적은 두려움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이용대는 자신의 유니폼을 건넨 뒤, 물리치료실로 향했다. 오후훈련의 시작은 고유수용감각촉진법(PNF). PNF는 물리치료사가 직접 손으로 부상부위를 눌러가며 체중을 싣고, 선수들은 물리치료사의 손을 기구삼아 부상부위의 근력을 키우는 훈련이다. “하나만 더 해봐요. 하나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용대를 향해 이관우(38) 물리치료사는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종용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안쓰러운 마음에서 “너무 힘들겠어요. 힘내세요. 꾹 참고, 하나 더!”를 외쳤는데, 이용대의 표정은 더 안 좋아지는 듯.

재활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 선수의 몸은 정상과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부상부위가 재발할 수 있다는 두려움. 심리적인 이유로 정상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용대 역시 “오전에 라켓을 한 번 잡아봤는데 (다시 아플까봐) 무서워서 전력으로는 스윙을 못하고, 70%% 정도의 힘만 썼다”고 털어놓았다. PNF를 마친 뒤에는 웨이트트레이닝실로 이동.


○“몸은 안 힘들어요. 마음이 힘들 뿐이지요.”

웨이트트레이닝실에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STC에는 이용대 이외에도, 양준혁(40), 배영수(28), 오승환(27) 등 삼성라이온즈 소속 프로야구 선수들과 이관우(31·수원삼성 블루윙스) 2006도하아시안게임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이성혜(25·삼성에스원) 등 약 20여명의 선수들이 부상 후유증을 씻고 있었다.

웨이트트레이닝실은 다소 평온한 분위기. 절치부심,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선수들을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이용대는 “재활은 마음이 힘들지, 몸이 힘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몸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과격한 훈련은 할 수가 없다. 부상부위는 특히 그렇다.

이용대가 신경을 쓴 부분은 어깨와 등 근육. 팔꿈치만 완쾌되면, 바로 라켓을 잡을 수 있도록 배드민턴에 필요한 근육들을 단련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용대와 함께 3∼4kg짜리 덤벨을 들자, 옆에서 오승환이 25라고 적힌 덤벨을 양 손에 낀 채 기(氣)를 불어넣고 있었다. ‘역시, 돌부처는 다르구나.’ “어떻게 25kg 짜리를 그렇게 가볍게 드느냐?”는 질문에 오승환의 대답. “이건 kg이 아니라 파운드(약0.45kg)인데요.”

대부분 이곳에서 처음 인연을 맺지만, 재활훈련 중인 선수들끼리는 금세 친해진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기가 쉽다. 싹싹하기로 소문난 이용대는 특히 삼성 라이온즈 ‘형님’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이용대의 부상부위(팔꿈치)가 야구선수들도 자주 다치는 부위인지라, 턱걸이를 통한 팔꿈치 강화 비법도 전수. 양준혁은 “우리가 고작 대구에서 최고라면, (이)용대는 전 세계에서 최고인 것 아니냐”면서 “한참 동생이지만, 배울 것이 많다”며 웃었다.


○‘셔틀콕 치기 위해 셔틀런?’

“오늘 하나도 안 힘들죠? 그래서 제가 준비한….” 이용대가 “오늘의 마지막 프로그램”이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냈다. 히딩크를 통해 유명해진 셔틀런(30m왕복달리기). 일명 ‘공포의 삑삑이’다. 1∼20단계의 레벨. 신호음에 맞춰 레벨 당 12차례씩 왕복하고,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점 속도를 높여야 한다.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이다.

“레벨 10넘기면 제가 해달라는 대로 다해드릴게요.” 배영수가 승부근성을 자극했다. 스타트. 레벨5를 넘기자, 숨이 차오른다. 레벨8부터는 이용대의 잘생긴 얼굴대신 뒤통수만 보인다. 겨우겨우 레벨10. 터질 듯한 심장을 움켜쥐며 배영수에게 과연 ‘무엇을 해달라고 해야 할지’만 생각. 레벨11을 넘기는 순간, 털썩 주저앉았다. 이용대는 폭주기관차처럼 계속 달리다 결국 레벨 17부근에서 멈췄다. 재활훈련 종료. 안병철 센터장은 이용대에게 “내일(10일)부터 본격적으로 배드민턴 훈련을 해도 좋다”고 통보했다. 싱글벙글, 윙크왕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겸손과 간절함. 이용대의 신무기

베이징올림픽여자태권도 금메달리스트 황경선(23·고양시청)은 올림픽 직전, 이런 말을 했다. “2006년 내측무릎인대가 끊어졌을 때가 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지루한 재활훈련만 했다. 빨리 태권도를 하고 싶은데 도복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그때 내게 태권도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달았다.”

이용대는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재활훈련을 계기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힘든 시기. 조언을 아끼지 않고, 힘이 돼 준 사람들. 그들을 통해 “나 혼자 잘나서 이 위치까지 온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았다.

사소하게 지나치던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마음에 새겼다. ‘겸손 그리고 간절함.’ 이미 세계정상에 오른 21세 청년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 이었다. 긴 터널을 지난 윙크왕자는 또 하나의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용인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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