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우의 MLB IN&OUT]‘거만한 홈런’은 환대받지 못한다

입력 2009-11-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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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머니의 양면성
얼마 전 허핑턴 포스트의 찰스 워너라는 기자가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와 마쓰이 히데키를 칭찬하는 기사를 썼다. 칭찬 내용은 단순히 두 선수가 이번에 양키스가 우승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맹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하는 순간 그들이 보여준 침착함, 자신감, 성숙된 축하, 심지어 존엄성까지 거론하며 차분한 세리머니를 극찬했다.

이것은 최근 TV에서 보여지는 지나친 ‘Show up’, 즉 ‘날 좀 바라봐’식의 볼썽사나운 자기 PR을 꼬집는 글이기도 했다. 또한 이를 부추기는 방송사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단순히 야구뿐 아니라 풋볼, 아이스하키, 농구 등 각종 프로 스포츠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이런 세리머니가 때론 스포츠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야구에서는 역시 타자가 홈런을 칠 때 가장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실제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리머니를 보이려 고심한 흔적까지 느껴진다. 이런 세리머니의 선구자는 양키스의 거포였던 레지 잭슨이 첫손에 꼽힌다. 까마득히 담장을 넘어 뻗어나가는 자신의 타구를 타석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며 관중들의 환호를 만끽하는 것은 물론 그리 많지 않은 커튼콜에 기다렸다는 듯이 덕아웃을 나와 유유히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이제는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잭슨의 이런 모습은 훗날 켄 그리피 주니어, 배리 본즈도 자연스럽게 배워 상대팀을 자극하기도 했다.

물론 끝내기 홈런이나 안타, 혹은 경기 후반 뒤집기 상황이 연출됐을 때 이런 세리머니는 보는 이에게 한층 더한 흥분과 감동을 던져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아닌 경기 중에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홈런 중의 하나에서 나왔다면 상대 팀과 팬들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 세리머니는 왠지 이기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스콧 롤렌처럼 홈런을 날린 뒤에도 마치 파울플라이를 치고 덕아웃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선수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베이스를 돌고 사라지는 선수도 특이하겠지만 홈런을 치고 거만하게 1루 쪽으로 몇 걸음을 걷다 마지못해 뛰기 시작하는 모습도 그저 멋있다고 바라보기에 뭔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모든 행동이 어떤 결과로 연결이 된다고 봤을 때 넘지 말아야할 선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한 야구선수는 오랜 전부터 미식축구에서 성행하는 터치다운을 축하하는 엔드존의 ‘치킨 댄스’를 보고 “만약 풋볼 선수들이 온 몸을 감싸고 있는 호신 장비만 없었다면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얘기는 지나친 세리머니는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상대로 하여금 ‘꼭 설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요즘은 미국이나 우리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이런 프로그램은 각본상의 연출이 아닌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애드립 등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설사 모든 상황을 이렇게 갈 수 없고, 어느 정도의 설정된 범위 내에서 가능한 연출이겠지만 지나치게 연출된 느낌이 나오게 되면 리얼리티의 진정한 의미는 상실되고 말 것이다.

스포츠에는 흥분이 필요하다. 여기에 선수들의 몸짓 하나가 주는 강도는 때론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런 행동 하나가 시간을 두고 정당치 않은 설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는 진정한 스포츠의 흥분과는 거리가 먼 뒷골목 수준의 치졸함이 될 수도 있다. 때와 분위기를 정확히 이해하는 세리머니만이 야구의 진정성과 연결되지 않을까 한다.

송 재 우 메이저리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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