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볼 맞으면 빈볼로 보복…개인보다는 팀 대 팀 기싸움

입력 2011-10-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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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클리어링은 우발적으로 빚어지기도 하지만 묵은 감정의 뒤늦은 표출이기도 하다. 2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LG와 두산의 벤치 클리어링도 지난달 양 팀의 2연전 맞대결 당시 이미 잉태됐다. 잠실|임진환 기자

■ LG-두산의 벤치 클리어링 재구성

2일 잠실구장에선 라이벌 LG와 두산의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7회말 LG 투수 유원상의 투구가 두산 오재원의 머리 뒤쪽으로 날아가면서 양 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벤치 클리어링은 우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물밑에서 예고편이 만들어진다. 두산과 LG도 마찬가지. 야구가 존재하는 한 필요악처럼 뒤따르는 벤치 클리어링. 이번 LG와 두산의 사례를 재구성해 살펴본다.



● 발단은 지난달 맞대결


2일 발생한 양 팀의 빈볼 시비와 벤치 클리어링은 이날 우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3연전 이전에 맞대결을 펼쳤던 지난달 13∼14일의 2연전이 발단이었다. 당시 오재원이 이틀 연속 LG 투수들의 투구에 몸을 맞으면서 두산은 복수의 칼을 갈았다. 두산 A코치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자 이번 3연전을 앞두고 두산의 베테랑 선수 B는 LG 주장 박용택과 이택근에게 “준비하고 있어라”고 넌지시 암시를 줬다. 야구에선 이런 상황이 있어도 종종 타이밍이 맞지 않아 보복구가 유야무야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실행된다. 결국 1일 두산 이현승이 6-1로 크게 앞선 8회초 박용택의 등을 때리는 공을 던졌다. 당시 박용택은 마운드로 달려 나가려다 참으면서 벤치 클리어링으로 번지진 않았다. 그리고 2일 오재원이 LG 선수들의 타깃이 됐다. 박용택이 전날 몸에 맞은 데 대한 경고였다. 선발 박현준의 투구가 한 차례 머리 쪽으로 날아간 뒤 유원상의 투구가 다시 오재원의 머리를 향했다.


● 하루 뒤의 풍경

LG와 두산 선수들은 3일 전날의 벤치 클리어링을 화두로 삼았다. 그러나 대부분 “야구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다. 오해나 감정이 쌓이면 그라운드에서 풀어야 한다”며 전날의 앙금을 담아두지 않으려 했다. 가끔은 2·3차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하지만 양 팀은 이미 모두 “우리 선수가 맞으면 너희도 맞는다”는 경고를 주고받으며 싸움을 끝냈다고 봤다. 경기 전 복도를 오가며 서로 인사를 나눴고, 친한 선수끼리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전날의 벤치 클리어링은 개인의 감정보다는 팀 대 팀의 기싸움이었기에 한번으로 종결한 듯한 양상. 전날 멱살잡이를 했던 이택근과 오재원은 이날 경기 중 1루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양 팀 코칭스태프도 “벤치 클리어링도 야구의 일부 아니냐”고 말했다.

다행히 양 팀 선수 중에선 부상자가 없었지만 작은 해프닝들은 있었다. LG 오지환은 “두산 신경식 코치님은 중학교 시절 은사님이신데 ‘안 들어가?’라고 고함을 치셔서 뒤로 물러났다”고 말했다. 모두 선후배, 사제간으로 얽힌 한국프로야구의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한국만의 벤치 클리어링 풍경이다.

잠실|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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