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 혼으로…기교로…할아버지 투수들 노·풍·당·당

입력 2012-05-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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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어(왼쪽)-야마모토. 스포츠동아DB, 사진출처=주니치드래곤즈

미·일 최고령 투수들의 불꽃투구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 베테랑 왼손투수가 화제다. 강속구 투수가 대접받는 프로야구라는 험한 정글에서 ‘늙고 병든’ 투수들이 지혜로운 피칭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며 의미 있는 승리를 따냈다. 1962년생 제이미 모이어(콜로라도)는 4월 18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6안타 2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역대 메이저리그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1932년 브루클린 다저스 잭 크윈)을 무려 80년 만에 깼다. 4월 30일 일본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이 나왔다. 주니치의 노장 왼손투수 야마모토 마사히로가 홈구장 나고야돔에서 벌어진 요코하마전에 선발 등판해 승리투수가 됐다. 1965년생으로 프로생활 29년 동안 552경기에 등판해 통산 212승째. 주니치 투수로는 최다승이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다승 순위 19번째다.


美 50세 제이미 모이어


2년전 은퇴 뿌리치고 수술
지난달 시즌 첫 승 신고
80년만에 ML 최고령 V

日 47세 야마모토 마사히로

프로 29년차 주니치맨 부활
130km 저속 직구 위력
시즌 방어율 0.55 리그 톱



전문가들이 본 두 노장투수

범타 유도…타자들 꼼짝 못해
김성근 감독 “대단한 컨트롤”
선동열 감독 “불굴의 의지”



●‘피네스 피처’ 모이어의 마이 웨이


2010년 등판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사라졌던 모이어는 은퇴를 종용하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비로 수술했다. 힘든 재활을 견딘 끝에 콜로라도 유니폼을 입은 지 3경기 만에 대기록을 세웠다. 모이어는 이날 시속 130km도 되지 않는 느린 공으로 승리를 만들어냈다.

메이저리그는 느린 공으로 타자를 요리하는 투수를 피네스 피처(Finesse Pitcher)라고 부른다. 그는 4월 25일 피츠버그전에서도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고, 30일 뉴욕 메츠전에서도 5이닝 동안 4실점한 뒤 승패 없이 내려와 50세 투수의 녹록치 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시애틀 시절 모이어는 일본인 포수 조지마 겐지에게 문화적 충격을 안겨 화제가 됐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조지마는 모이어와 배터리를 이룬 날 일본에서 했던 대로 투수를 리드하려고 했다. 모이어는 이런 조지마를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내가 던지는 대로 무조건 받아”라고 했다. 투수는 반드시 포수가 리드해야 한다는 일본야구의 선입견을 깨트려버린 일화였다.


○이종범은 떠났지만 아직도 던지는 야마모토

야마모토는 우리 야구팬들에게도 이름이 낯설지 않다. 선동열 KIA 감독이 주니치에서 선수로 활약했을 때 귀에 익은 이름이다. 기억 속에 맴도는 한일슈퍼게임에도 출전했던 그가 아직 현역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야마모토는 요코하마전에서 시속 130km를 겨우 넘는 공이지만 강속구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과 변화구, 담력으로 버티며 7이닝 동안 2안타만 내줬다. 일본 언론은 “90개의 공에 혼을 담아 던졌다”고 표현했다. 야마모토가 전성기였던 1992∼1995년 주니치 감독을 맡았다가 컴백해 제자의 승리를 벤치에서 지켜봤던 다카기 감독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시속 134∼135km의 공”이라고 했다. 승리를 극적으로 만든 복선도 있었다. 4월 19일 부친상을 당했다. 22일 히로시마전에서 승리한 뒤 그 공을 아버지의 관에 넣어드렸다. 그리고 안방에서 주니치의 전설을 새로 쓰는 승리를 따낸 것이다. 올 시즌 5경기에 등판해 33이닝 동안 단 2실점, 방어율 0.55로 센트럴리그 선두를 달리는 야마모토의 회춘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해 부상으로 한 시즌을 쉰 뒤 올해 마운드에 다시 섰다. 우리 같았으면 몇 번 유니폼을 벗겼을 나이지만 베테랑을 아껴서 감동의 스토리를 만들어낸 일본프로야구의 시스템도 대단하고, 20년 넘게 변함없는 공을 던지는 야마모토의 자기관리도 본받을 만하다.


○베테랑 기교파 투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이어와 야마모토의 롱런을 보면 투수가 마운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반드시 힘과 스피드가 필요한 것은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야마모토는 전성기에도 타자를 윽박지르기보다는 변화구와 평범한 직구로 승리를 따냈다.

주니치 시절 선수 선동열은 “참 희한하게 던진다. 덩치가 좋은데도 빠른 공을 안 던진다. 컨트롤이 기막히다. 인간성도 좋아 마무리로 나서면 꼭 승리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었다. 모이어도 메이저리그 투수로는 크지 않은 체구(키 181cm)지만 타자와의 수 싸움에서 허점을 파고들며 용감하게 공을 던진다. 올해 스프링캠프에선 “숫자(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열정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도 했다. 투수는 F1 경기의 카레이서처럼 스피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모이어다. 베테랑 선수에게 찾아오기 쉬운 나태함을 부지런함으로 이겨낸 불굴의 의지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투수조련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노하우가 많은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투수가 성공하기 위해선 타이밍과 컨트롤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야마모토의 경우 선수 시절 초반 빼어날 것 없는 투수였으나 LA 다저스 연수를 다녀오면서 체인지업을 배운 뒤 새롭게 태어났다고 했다. “컨트롤이 좋아 아웃코너 낮은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몸쪽으로 찔러 넣으면 타자들이 꼼짝 못한다. 삼진은 없어도 범타가 많은 투수”라고 분석했다. 김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이 같은 기교가 투수들을 보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도 명확한 진단을 했다. “우리는 투수가 스피드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고, 일본은 컨트롤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 차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감독은 또 “(히로시마 소속으로 통산 200승을 넘겼던) 기타벳부는 공의 3분의 1을 스트라이크 존에서 넣고 빼고 했다. 우리는 아직 이런 투수가 없다. 삼성의 이우선이 비슷한 편인데 요즘 컨트롤이 나빠진 것 같다”고 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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