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감독 “싸운다, 고로 존재한다”

입력 2012-05-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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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감독은 매력적이지만 외로운 자리다. 매일 수많은 결단을 내리고 힘든 전쟁을 치러야 한다. 2012시즌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8개 구단 감독들이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왼쪽 4번째)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과연 누가 마지막 가을잔치까지 살아남을까.스포츠동아DB

1.선수들과의 심리전
불만 잠재우고 장점은 극대화 필수

2.상대팀과의 전면전
수많은 시행착오 거쳐야 명장 반열

3.극성팬과의 신경전
팀 부진때 쏟아지는 비난 상상초월


프로야구 감독의 3가지 전쟁


2000년 시즌이 끝난 뒤 해태의 상징이던 김응룡 감독이 마침내 삼성으로 옮겼다. 이미 한 차례 삼성으로 옮기려다 박건배 구단주의 간곡한 만류에 주저앉았던 터였다. 그러나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는’ 상황에서 쓰러져가는 왕국을 홀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삼성행을 발표한 날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나는 삼성과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다. 야구를 하러 간다”고.


○감독의 첫 번째 전쟁=선수와의 전쟁

2000년 겨울 기자가 경산볼파크를 찾았을 때 김응룡 감독은 감독실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선수들은 훈련 중. 해태시절과 같았다. 그는 평소 훈련장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코치들에게 맡긴다. 대신 한번 훈련장에 갔다가 느슨하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선수가 걸리면 경을 쳤다.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이 장기였다. 삼성 선수들은 긴장했다. 무서운 감독이 왔다는데 훈련장에선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기에 더욱 땀을 흘렸다. 본인은 야구를 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선수와의 심리전쟁에서 이기고 들어갔다.

김성근 감독. 하루 종일 훈련장에 있다. 몸은 하나지만 눈은 훈련장 구석구석을 감시한다.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잠자리 눈’. 잠자리의 눈은 전후좌우 360도로 사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훈련을 지켜보고 나태한 선수를 찾아낸다. 감독의 얼굴이 앞을 보고 있지만 뒤에 있는 선수들이 더욱 긴장하고 쉼 없이 훈련하는 이유다.

김응룡 감독. 선수들에게 정(情)을 주지 않는다. 말도 없다. 선수를 내칠 때 가차 없이 칼을 휘두른다. 엔트리에 들어 뛰는 선수는 20명 남짓. 나머지 선수들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감독의 역할이다. 불만이 많은 선수들을 제압하고 따르게 하는 일이 바로 감독이 해야 하는 첫 번째 전쟁이다.

김성근 감독. 훈련은 독하게 시켜도 모든 선수를 껴안는다. 하나라도 쓸모가 있다면 끝까지 기회를 준다. 야구 오래해서 기회를 잡으라고 한다. 선수들을 가족처럼 대한다. 구단과 전쟁을 할지언정 선수들은 따르게 한다. LG가 지난해와 가장 달라진 것은 이제 자기 감독과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감독의 두 번째 전쟁=그라운드에서의 전쟁

LG 시절 이광환, 천보성 감독의 공통점. 선글라스를 애용했다. 시력보호라는 이유도 있지만 긴장된 순간 상대 덕아웃과 자기 덕아웃에 스스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방편이다. 초보 감독의 가장 큰 약점은 경험부족. 선수시절 여우라는 별명처럼 야구를 센스 넘치게 잘했던 김재박 감독. 1996년 현대 지휘봉을 쥔 뒤 첫 경기에서 긴장한 나머지 어떻게 사인을 내는지조차 잊어버렸다. 결국 선수가 알아서 번트를 대고 1-0으로 이겼다.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선수와 감독은 그렇게 차이가 난다. 하늘에서 타고난 감독은 없다.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수많은 경험을 거치면서 경기 도중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프런트가 호들갑 떨면 안 되는 이유다.

상대팀과 벌이는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판과의 신경전도 있다. 가능하다면 심판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감독이 할 일이다. 그것이 인간성이 될 수도 있고, 어필할 때의 좋은 매너가 될 수도 있다. 김응룡 감독처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때도 있다. 선택은 감독의 몫이다.


○감독의 세 번째 전쟁=매스컴·팬과의 전쟁

감독의 일 가운데 하나는 욕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제아무리 잘 하더라도 감독은 욕을 먹게 돼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직업이다. 사람마다 야구를 보는 눈이 다르다. 해석도, 복기도 제각각이다.

이런 면에서 롯데 감독은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다. 부산 팬들의 뜨거운 열정은 성적이 부진할 경우 비난의 화살로 바뀐다. 지난해 처음 프로 사령탑에 오른 롯데 양승호 감독. 시즌 초반 팀이 패배를 거듭하자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비난에 부담감이 겹치는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도 말이 아니었다. 5월 양 감독은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구단에서 받은 계약금과 이번 달 연봉까지 통장으로 보냈으니 빨리 돌려주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다. 사람이 살고 봐야 한다면서 감독직에서 물러나라는 전화였다.

그날 이후 양 감독은 마음을 비웠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이 바로 마음을 비운 사람이다. 롯데는 승리를 거듭했다. 팀이 3위에 올라도 감독을 향해 쓰레기를 던지던 극성팬 몇몇이 어느 날 사직구장을 찾았다. “그동안 미안했다”며 큰 절을 했다. 롯데가 2위를 달리던 때였다. 양 감독은 한때 세상의 바닥에 있었기에 지금 두려운 것이 없다.

전문기자 n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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