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한달전 대표 퇴출 될 뻔한 최현주… ‘폭탄’이 ‘퀸’ 됐다

입력 2012-07-3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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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애들보다 느릴 뿐 부족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최현주로는 안 돼.”

런던 올림픽 개막을 한 달가량 앞둔 6월 중순. 대한양궁협회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표팀 맏언니 최현주(28·창원시청) 때문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대표선발전을 통과한 최현주가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극심한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연습 때 10점 만점에 5점이나 6점을 쏘는 일이 빈발했다. 컨디션이 좋을 땐 곧잘 쏘다가도 안 좋을 땐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난조를 겪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최현주 때문에 대표팀 전체 분위기가 널뛰기를 했다.

그에겐 ‘폭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당시 한 관계자는 “명색이 대표팀 선수인데 어떨 때는 중학교 3학년보다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활을 쏜다”고 푸념을 했다.


○ 사상 첫 퇴출 선수 될 뻔

최현주를 대표팀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우세해졌다. 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자 대한양궁협회가 수십 년 동안 지켜온 대표 선발 원칙을 스스로 깨는 일이었다.

양궁의 대표선발전은 치열하고 공정하기로 유명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니 금메달리스트 할아버지라도 특별한 어드밴티지를 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평가전 성적으로만 대표를 선발한다. 그렇게 뽑은 선수들이 지금까지 모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왔다. 그 원칙을 협회가 스스로 깨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 여자 양궁의 빛나는 전통인 올림픽 단체전 7연패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협회는 장영술 총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게 “최현주를 다른 선수로 교체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단호했다. 최현주를 안고 가겠다는 거였다. 코칭스태프는 장시간 회의 끝에 “남은 한 달간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최현주를 제 컨디션에 올려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최현주는 런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 런던의 기적

양궁 대표팀은 19일 런던으로 출국했다. 그런데 직전까지도 최현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3일 강원 원주시 제1군수지원사령부에서 열린 실업팀 현대백화점과의 연습 경기에서 최현주는 3엔드와 4엔드에 각각 5점짜리와 6점짜리를 연달아 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코칭스태프의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모든 국민이 금메달을 의심치 않고 있는데 최현주가 포함된 여자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였기 때문이다.

런던 올림픽 양궁 랭킹라운드가 열리기 하루 전인 26일.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다. 최현주가 잃었던 감을 찾은 것이다. 그것도 연습이 끝나기 1시간 반 정도 전의 일이었다. 박채순 여자 대표팀 코치는 “어느 순간 현주가 급격히 좋아지더라. 그래서 현주를 불러 ‘그래,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현주가 ‘저는 포기 안 한다고 했잖아요’라고 답하더라. 이제 됐다 싶었다”고 했다.


○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30일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여자 양궁 단체 중국과의 결승전.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갑자기 해가 뜨더니 운동장 저편에 무지개가 걸렸다. 어쩌면 한국의 우승을 예고하는 길조였는지도 모른다.

믿었던 이성진(27·전북도청)과 기보배(24·광주시청)는 평소답지 않았다. 1엔드부터 이성진은 7점을, 기보배는 6점을 쏘는 등 시종 불안했다. 위기에 빠진 한국 양궁을 살린 건 최현주였다. 2번 사수였던 최현주는 8차례 활시위를 당겨 5번이나 10점 과녁을 꿰뚫었다. ‘폭탄’이라는 이유로 2번 사수에 배치된 최현주가 실질적인 에이스로 팀을 이끈 것이다. 201-209에서 마지막 사수 기보배의 한 발이 남았다. 기보배는 여기서 9점을 쐈고 한국은 210-209 한 점 차로 극적인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단체전이 시작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7개 대회 연속 우승이었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단연 최현주였다. 그는 “그동안 너무 부진해 성진이와 보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오늘 활약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최현주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장 감독은 눈물을 터뜨렸다.


○ 늦깎이의 반란은 이제 시작

장영술 한국 양궁대표팀 총감독이 여자 단체전에서 7연패를 하는 순간 기쁨에 겨워 울먹이며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코칭스태프가 말하는 최현주는 ‘노력형’ 선수다. 다른 올림픽 메달리스트와는 달리 최현주는 20대 후반에야 처음 태극마크를 단 늦깎이다. 그 흔한 유소년이나 상비군, 주니어 대표도 한 번 못 해 봤다. 국제대회 경력은 올해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 두 차례 출전한 월드컵이 전부다.

대표 선발 과정부터 드라마틱했다. 3차례에 걸친 평가전과 1차 월드컵까지 그는 4위였다. 하지만 5월 초 터키에서 열린 2차 월드컵에서 막판 뒤집기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활을 잘 못 쏠 때도 다른 애들보다 느릴 뿐 부족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 온 게 빛을 본 거 같다”고 말했다. 랭킹라운드 21위로 개인전에 출전하는 그는 “단체전이 모두를 위한 경기였다면 개인전에서는 나 ‘최현주’만을 위한 후회 없는 경기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최현주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현주의 끊임없는 노력이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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