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나는 발로 찌른다… 한국형 발펜싱의 힘

입력 2012-08-0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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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펜싱 ‘사브르’ 아시아 첫 올림픽 金 김지연
아무도 몰랐다. 국민, 언론, 대한체육회, 펜싱 대표팀 감독,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그가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주인공이 될 줄은. 그는 시상식을 마치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과 대면한 자리에서조차 금메달 획득이 믿기지 않다는 듯 “로또 맞은 거 같아요”를 연발했다. 1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엑셀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인 김지연(24)이 그랬다.

한편 사브르가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여자 펜싱 정식 세부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아시아 선수로서는 첫 우승이다.


○ 펜싱 신데렐라의 탄생

김지연과 펜싱의 인연은 부산 재송여중 1학년 때 시작됐다. 당시 플뢰레로 입문했지만 부산디자인고 진학 후 코치의 추천으로 사브르로 전향했다. “찌르기만 하는 플뢰레보다 마구 후려치는 사브르가 더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사브르로 전향했지만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빠른 발과 패기는 좋았지만 세밀한 기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펜싱대표팀 여자 사브르 김용율 감독은 가능성을 보고 대표선발전에서 떨어진 김지연을 직접 추천해 발탁했다.

막상 대표가 됐지만 사브르 종목은 세계와의 격차가 컸다. 김지연은 2009년까지 세계랭킹 포인트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무명이었다. 2010년부터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지만 규모가 작은 대회에서도 1등은 한 번도 못했다.

한국 여자 사브르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이후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이 없기에 펜싱계의 기대도 적었다. 김 감독은 “솔직히 지연이가 런던 올림픽에서 가장 잘해야 4강 정도를 예상했다. 금메달은 꿈도 못 꿨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의 런던 올림픽 전력분석 자료는 김지연의 예상 성적을 8강으로 평가했다.

○ 한국형 발펜싱 1세대의 탄생

그러나 펜싱전문가들은 김지연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년간 유럽 펜싱 강국들의 장점을 꾸준히 흡수해 상대보다 한 발 더 뛰는 한국형 발펜싱을 완성한 결과라는 것. 오경석 KBS 펜싱 해설위원은 “10년 전만 해도 외국 코치들이 가르치는 것을 무작정 따라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코치가 없을 정도로 한국의 독자적 펜싱이 완성 단계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형 발펜싱에는 러시아의 빠른 발, 프랑스의 세밀한 손기술, 독일의 파워 등이 적절히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연은 한국형 발펜싱의 1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태권도와 육상선수 출신인 김지연은 플뢰레, 에페에 비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사브르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발펜싱의 원조 러시아 선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긴 팔 다리와 손기술을 앞세운 유럽 선수들은 빠른 발을 앞세운 김지연에게 말려 번번이 패했다.


○ 발펜싱의 백미 ‘콩트르 파라드’

그렇다고 김지연이 발만 빠른 선수는 아니다. 상대의 찌르기 기술을 쳐내는 정교한 손기술을 갖췄다. 특히 신속히 뒤로 물러나면서 상대를 유인한 뒤 공격해오는 검을 쳐내고 빠르게 역습을 감행하는 ‘콩트르 파라드’ 기술은 김지연표 발펜싱의 백미다.

김지연은 세계랭킹 1위 매리얼 재거니스(미국)와의 준결승에서 3-9까지 뒤져 패색이 짙었지만 콩트르 파라드를 이용해 대역전극을 펼쳤다. 소피야 벨리카야(러시아)와의 결승에서도 이 기술로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김지연은 고된 훈련 끝에 정상에 선 여느 금메달리스트와는 달리 “쉬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빨리 다시 검을 잡고 싶단다. “그냥 빨리 휘두르고 싶어요. 펜싱은 제 전부니까요.”

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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