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키 작다고 놀림받던 소년… 더 높이 가장 멋지게 날았다

입력 2012-08-07 03: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 양학선, 한국 체조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어릴 적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있다. 가난했던 살림살이 탓은 아니었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건 또래보다 작았던 키. 친구들의 놀림을 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엄마 아빠는 날 왜 이렇게 작게 낳아주셨을까?” 160cm의 작은 키가 훗날 세계 최고의 뜀틀 기술을 탄생시키는 원천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양학선(20·한국체대) 얘기다.

○ 혼자 집에 있기 싫어 시작한 체조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양학선은 방학이면 주로 혼자 집에 있어야 했다. 유일한 탈출구는 체조 선수였던 형을 따라 체육관 구경을 가는 것. 각종 신기한 체조 기구가 있는 체육관에 갈 때마다 놀이동산에 가는 것처럼 신났다. “집안 사정이 좋아서 어머니가 가정주부셨다면 체조를 안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엘리트 체조 선수의 길로 접어든 광주체중 시절. 작은 키는 여전히 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양학선은 다른 종목에 비해 작은 편인 체조 선수 중에서도 작았다. 근력과 파워가 붙지 않았다. “중학교 때 체조 선수를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보다 더 부모님을 원망했어요.”

○ 작은 키는 신이 내린 선물

하지만 광주체고 진학 후 돌파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코치들은 “작은 키를 역이용하면 남보다 더 높이 뛰고 더 많이 회전할 수 있다”며 뜀틀에 집중할 것을 권했다.

먼저 ‘뜀틀의 제왕’ 여홍철(경희대 교수)을 목표로 잡았다. 여홍철은 자신의 이름을 딴 뜀틀 기술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한국 체조 간판이다. 양학선은 여1(도움닫기 후 구름판을 구르고 도마에 손을 짚은 뒤 두 바퀴를 옆으로 비틀며 도는 기술)을 속성으로 익힌 데 이어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앞두고는 여2(여1과 형태 같음. 회전수만 두 바퀴 반. 난도 7.0점)까지 완성했다.

조성동 대표팀 총감독은 “광주에 있는 고등학생이 여2까지 완벽하게 해낸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웠다. 대표팀에 뽑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양학선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여2’를 앞세워 금메달을 목에 걸고 차세대 한국 체조 간판으로 떠올랐다.

○ ‘강심장’ 양학선

양학선의 비상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여2에서 반 바퀴를 더 돌아 총 세 바퀴를 옆으로 도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양학선은 자신의 이름을 딴 ‘양학선’을 국제체조연맹(FIG) 기술집에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난도 점수도 현 최고인 7.4점을 인정받았다. 양학선은 런던 올림픽 전초전인 지난해 도쿄 세계선수권 뜀틀 결선에서 ‘양학선’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체조인들은 한국 체조가 첫 올림픽에 나선 1960년 로마 올림픽 이후 한국 체조의 올림픽 노골드 징크스를 양학선이 깨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양학선은 타고난 강심장이다. 금메달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라고 말해서 오히려 좋다. 그런 전망들을 오히려 즐겨보겠다. 금메달로 부모님께 집을 지어 드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학선은 결국 부모님, 국민, 체조인,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며 한국 체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