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People]박기원, 대세는 스피드배구…日깨고 아르헨 간다

입력 2013-05-25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월드리그를 앞두고 박기원 남자배구대표팀 감독(맨 왼쪽)은 ‘스피드 배구’를 구사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박 감독이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진천|김민성 기자 mari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 어게인 1995!…월드리그 출사표 3년째 한국 남자배구대표팀 감독 박기원

한국 남자배구대표팀이 6월1일부터 2013월드리그에 출전한다. C조의 한국은 인터콘티넨탈 라운드에서 일본(화성) 핀란드(수원) 네덜란드(천안)와 홈 2연전을 벌이고, 캐나다, 포르투갈과는 원정 2연전을 펼친다. C조 1위를 차지해 7월17일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본선에 참가하는 것이 목표다. 3년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기원 감독은 1일부터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지휘하고 있다. 한국은 1995년 월드리그 본선에 올라 6위를 한 것이 최고기록이다. 요즘 국제대회 성적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2000시드니올림픽 이후 올림픽 본선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프로배구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월드리그와 올림픽, 세계선수권에서의 선전이 필요하다. 박 감독은 1970년대 한국 남자배구의 전성기 때 국가대표 레프트 및 라이트로 10여 년 간 활약했고, 이후 이탈리아에서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했다. 국내배구인 가운데 가장 국제흐름을 잘 알고 정보력도 빼어나며 선수들의 신망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세계배구 흐름은 전문화·스피드
선수들 체력·집중력이 관건

내달 1·2일 C조 日과 홈 2연전
일단 무조건 잡아야 본선행 수월
예선으로 떨어지진 않을 것



-큰 임무를 또 맡으셨다. 2013월드리그 목표를 어떻게 잡고 있는지.

“1차 목표는 아르헨티나에 가는 것이다. 쉽지는 않다. C조에서 2팀이 떨어지고 예선으로 가는데 그것을 막는 것이 2차 목표다. 6월1,2일의 일본전은 무조건 이겨야겠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배구가 보여줄 것은 무엇인지?

“스피드배구다. 2년 전부터 주장해왔던 것이다. 선수들에게는 솔직한 대화를 원한다. 감독과 선수와의 대화는 물론이고 선수끼리 또 선수 자신과의 대화를 말한다.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훈련 방법이나 답이 나온다. 그것이 없으면 목표를 정할 수 없다.”


-스피드 배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체력이다. 세터가 토스를 하기 전에 4명 공격수의 준비가 완벽해야 하고 필요 없는 동작은 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체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서브리시브도 좋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팀도 서브리시브 성공률이 60%를 넘지 못한다. 나머지 40%는 타점 높은 공격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흔히 말하는 2단 공격에서 얼마나 성공률을 높이느냐가 관건이다. 서브와 블로킹 수비로 40%를 얼마나 보충하느냐가 월드리그의 관건이다.”


-우리 배구가 프로화된 이후 국제대회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4월에 벌어진 한일톱매치를 본 많은 사람들은 우리 배구가 일본에 비해 훨씬 느리다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몇 년 전부터 세계배구의 흐름이 전문화와 스피드다. 동양배구의 시간차 공격과 정교한 배구를 이기기 위해 서양은 힘과 높이를 이용한 배구를 했고, 룰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바꿨다. 이제는 정교함을 갖추고 스피드배구까지 개발했다. 몇 년 전부터 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월드리그에 참가하면서 그 흐름을 늦게나마 따라가는 형편이다. 우리 프로배구도 최근 많이 빨라졌다.”


-용병이 우리 배구수준을 떨어트렸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는 않다. 이탈리아나 러시아도 용병을 여러 명 쓴다. 문제는 우리의 블로킹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 선수가 50점 60점을 내는 현상이 나온다. 가빈이 러시아에서 성공 못한 이유였다. 외국에서는 한 선수에게 공격을 집중시킬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상대 블로킹에게 잡힌다. 한 경기에 28∼30점 가량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패턴이다. 레오와 가빈은 우리에게 통하는 스타일이다. 블로킹이 답이지만 현재 우리 배구는 그것을 막을 키 큰 선수가 없다. 삼성화재는 다른 팀보다 서브리시브와 수비 2단 연결을 잘한다. 훈련도 많다. 남들은 뭐라 해도 자기 팀이 가장 잘하는 것을 전문화 한 신치용 감독이 대단하다.”


-대표팀을 오래 하셨을 테니까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1972년 프랑스 샹디에에서 벌어진 뮌헨올림픽 예선이 생각난다. 당시 진준택 김호철 이용관 등 대표선수 가운데 11명이 외국에서 뛰고 있었다.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우리와 북한, 대만이 예선을 하는데 북한의 전력이 좋다는 평가였다. 당시 분위기로는 무조건 북한을 이겨야 했다. 선배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표팀에 중앙정보부 요원이 따라다녔다. 박진관 감독에게 ‘팀이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서 ‘상대 분석을 위해 경기장면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보부 요원은 알았다고 하더니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북한의 경기장면이 담긴 필름을 구해왔다. 프랑스배구협회 직원을 청소부로 가장시켜 북한의 훈련장에 투입해 훈련모습도 알려줬다. 결국 첫날 경기에서 우리가 3-1로 이겼다. 북한은 그 패배에 충격을 받았는지 다음날 대만과의 경기를 포기하고 가버렸다. 그 이후 국제대회에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이라면 상상 못할 얘기다.

“그때 경기 끝나고 양 팀 선수단이 인사할 때 우리는 준비해간 생필품 등을 선물로 줬다. 북한은 준비가 없었다. 그 뒤 뮌헨올림픽에 나간 북한여자배구팀을 통해 남자팀의 선물을 받았다. 그때 맨손으로 와서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추리닝을 보내왔는데 제품의 질이 우리의 1960년대 것이었다. 대부분 선수가 그것을 버렸다.”


-재미있는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면?

“1978년 멕시코세계선수권 때다. 멕시코에 들어가기 전에 시차적응을 위해 LA에서 머물며 훈련을 했다. 그런데 숙소에 도둑이 들어 어느 선배의 돈과 패물을 모두 가져가버렸다. 그 선배는 결혼을 앞두고 해외에서 오팔을 샀는데 도둑맞았다. 자동차 1대 값이었다. 당시 해외에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돈보다 많이 가져가서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속으로 앓았다. 선배는 충격으로 배구를 안 한다고 숙소에 누워 지냈다. 후배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줬는데 기별도 안찼다. 결국 멕시코 대회에서 우리 팀은 박살이 났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 출전했다면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를 기억할 텐데.

“바로 우리 숙소 건너편에서 벌어졌다. 그때 우리하고 이스라엘이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선수촌에서 별도로 울타리를 만들어 관리했다. 창문을 통해 사건을 다 봤다. 테러범들이 차고로 나갈 때 경찰 뒤에 모여서 다 구경했다.”


-나이 드신 분들의 군 생활 얘기를 들으면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던데.

“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으로 뛰었다. 당시 하늘을 나는 새로 떨어트린다는 윤필용 장군이 있을 때였다. 신장 190cm 이상이면 군 면제였는데 나를 데려가려고 기준을 195cm로 높였다가 다시 190cm로 내렸다. 당시 수방사 팀이 대단했다. 강만수 이인 이춘표 이선구 등 국가대표 등이 대부분이었다. 대우도 잘해줬다. 윤필용 사건 뒤 수방사 배구단은 해체되고 보안사 배구팀으로 갔다. 당시 이낙선 상공부장관이 배구협회장을 할 때였는데 기업더러 배구팀 만들라고 하면 무조건 할 때였다. 우리 배구의 수준이 아주 높았다. 일본은 세계최강이고 중국은 이제 막 올라올 때였다. 우리도 훈련이 많아 속공이나 콤비 플레이 등은 다른 나라 팀이 막지 못했다. 동양배구가 강하자 그것을 이기기 위해 유럽배구가 들고 나온 것이 사이드마크 안테나, 리베로, 점프 서브 등의 제도 변경이었다.”

남자배구국가대표 박기원 감독. 스포츠동아DB



박기원 감독은?


▲생년월일 : 1951년 8월 25일

▲학력사항 : 성지고-한양대

▲선수경력 : 1972뮌헨올림픽 대표, 1976몬트리올올림픽 대표

▲감독경력 : 이란배구대표팀감독(2003년), LIG손보 배구단 감독(2007∼2010년), 한국배구연맹 경기운영위원회 운영위원(2010년), 남자배구대표팀 감독(2011년∼)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뉴스스탠드